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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미술 다시보기]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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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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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샤토브리앙은 풍경에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부분이 있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자연에 대한 실재적인 경험이 예술가들에게 몽상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철학자 루소의 영향을 받은 유럽의 낭만주의자들은 문명 생활로 타락한 인간의 순수함을 되찾아줄 수 있는 유일한 인도자는 자연뿐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자연을 진리의 원천으로 간주하며 인간의 감정과 사유를 표출하기 위해 예술적 매개체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서구 미술계에서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자연을 통해 작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풍경화가 제작되기 시작했다.

1818년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에 의해 제작된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이러한 변화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 화단에서 풍경화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제기한 화가이다. 자연을 그리는 작업이 신에게 다가가는 수단이라고 믿었던 그는 자신의 창작 과정을 일종의 예배로 간주했다. 예술의 영적인 능력을 확신하며 프리드리히는 자연에 대한 관찰을 통해 신의 계시와 창조의 과정을 탐구하고자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경건하고 신비주의적이고 때로는 종교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평가받는다.

절벽 위에서 안개 낀 풍경을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이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이 작품의 구도는 매우 독특하다. 우리는 방랑자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며 그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단지 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안개 자욱한 계곡의 모습을 통해 그가 자연의 비경에 도취돼 있다는 사실만을 전달받는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황홀감과 무력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이 남자는 우리 자신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 그림에서 작가는 무한한 자연과 대비되는 인간의 한계를 일깨워주고자 했다. 바위와 한 몸처럼 산 정상에 서있는 이 방랑자는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자신의 물리적 혹은 영적 상승의 한계를 인지한 듯하다. 따라서 이 그림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건한 침묵은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하는 자연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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