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명심보감』출간한 안대회 교수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더 큰 나라를 이룬다. 관리가 참으면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해진다." 화를 참으라는 내용이 주로 담긴 『명심보감(明心寶鑑)』 8장 계성(戒性)편에 실린 공자님 말씀이다. 이런 구절은 어떤가. "얻지 말아야 할 것을 얻은 것보다 더 짧게 가는 것은 없고, 제 능력을 믿고 오만한 자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 바른 몸가짐을 논한 5장 정기(正己)편에 실린 글이다. 최근 『명심보감(明心寶鑑)』완역본(민음사)을 출간한 안대회(63)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가 혼란스러운 현 시국을 촉발한 '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꼽은 문장들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완역본을 출간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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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 말~명나라 초기의 학자 범입본(范立本)이 쓴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혀 주는 귀중한 거울'이란 뜻을 가진 제목의 잠언집이다. 『논어』『맹자』등 160여 종에 달하는 문헌에서 발췌한 격언과 세간에 떠도는 속담, 시 등 총 774개 글이 수록돼 있다. 조선 시대에는 남녀노소가 읽는 인기 수신서였고, 현재도 200여종 넘게 서점에 나와 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형통하다)'이나 '증아다여식(憎兒多與食: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등의 출처도 『명심보감』이다.
하지만 그동안 출간된 대부분의 책이 일부 내용만 담은 발췌본인데다 번역이나 해석에도 오류가 많았다. 『채근담』『북학의』 등 수많은 고전 완역을 해온 안 교수는 지난 5년간 모든 판본의 『명심보감』을 비교하며 원저에 실린 20개 장, 774개 글 모두를 새롭게 번역하고 해설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지난 19일 서울 성균관대에서 만난 안 교수는 "처음엔 너무 대중적인 책이라 나까지 발을 들여놓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지만, 연구를 하다 보니 '이거 정말 재미있다'는 느낌이 왔다"고 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완역본 표지사진. 민음사 |
Q : 어떤 점이 그렇게 재밌었나.
A : 지금으로부터 600년도 전에 씌어진 글임에도 현대인들의 삶에 딱 들어맞는 격언이 정말 많았다. 게다가 중국, 한국은 물론 일본·베트남·태국 등 동아시아 전체에서 널리 읽힌 베스트셀러인데 연구가 거의 안 되어 있었다. 본국인 중국에서도 거의 사라졌다가 한국 드라마 '대장금', '별에서 온 그대' 등에 『명심보감』이 등장하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지식의 '환류(還流) 현상'인 셈이다.
Q : 중국에서 잊혀진 책이 된 이유는.
A : 저자 범입본은 지식인 네트워크에서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학자였다. 수많은 책을 읽고 많은 이를 만났던 재야의 천재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책은 당시에도 대성공을 거뒀지만 정식 학계에선 '내용이 통속적이다, 수준이 낮다'며 책의 가치를 무시했고 차츰 잊혀졌다.
Q : 고려 문신 추적(秋適·1246~1317)을 저자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은데.
A : 조선시대 시중에 떠돌던 책엔 저자의 이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 초반 대구에 있는 추씨 가문이 조상 현창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집에 보관된 책에 자신들의 선조인 추적을 저자로 써 넣은 것이 시작이었다. 1958년 베트남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베트남어판 『명심보감』을 선물 받은 것을 계기로 『국역증보명심보감』이 널리 보급됐는데, 이 책에서 추적을 저자로 표기하는 바람에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갔다.
Q : 지금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A : 여성들에게 '삼종지도(三從之道·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따른다)' 등을 강조한 20장 부행(婦行)편 등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폐기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구절이 많다. 선행을 권하고 도덕을 강조하는 동시에 생활 속 처세를 알려주는 심리학책, 자기계발서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11장 성심(省心)편에선 '복이 있다고 남김없이 누리지 말고, 세력이 있다고 끝까지 써먹지 말라'고 말한다. 힘도 복도 아껴 남에게 베풀어야 행복해진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지금과 같이 안팎이 어려운 시기야말로 인류 보편의 가치와 인생살이의 교훈이 담긴 『명심보감』을 다시 읽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지도자의 몸가짐을 다룬 치정(治政)편, 마음의 성찰을 강조한 성심(省心)편, 분노를 다스리라는 내용의 계성(戒性)편 등을 권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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