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필요성이 각인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심폐소생술’이다. 그날 숨 막히는 현장에서 위기에 놓였던 많은 이들을 구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사람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심장을 마사지하던 일반인들이 있어 가능했다. 이후 일반인들이 직접 시행하는 심폐소생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학교, 기업,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등을 중심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됐고, 일반인이 소중한 생명을 살려냈다는 따뜻한 소식이 이어졌다.
지난 10년간 국내 일반인 심폐소생술 시행률은 꾸준히 증가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비율은 2013년 9.1%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31.3%를 기록했다. 그만큼 삶을 다시 찾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병원 도착 전 일반인의 심폐소생술이 시행된 경우 환자의 생존율은 13.2%로, 시행되지 않았을 때(7.8%)보다 1.7배 높다. 뇌기능 회복률도 일반인 심폐소생술이 이뤄지면 9.8%에 이르지만, 시행하지 않았을 땐 4.2%에 그쳤다.
이처럼 일반인 심폐소생술의 기여도가 크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시행률은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15년에 이미 50%를 넘어서는 시행률을 보였다. 미국은 2022년 기준 40.2%, 영국은 70%에 달한다. 선진국들이 높은 시행률을 확보한 배경엔 법으로 정한 의무 규정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은 심폐소생술을 필수 교육과정으로 두고 있다. 독일, 스위스, 일본은 심폐소생술 교육을 이수해야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강력한 유인책으로 여겨진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자신 또는 제3자의 위험을 초래하지 않고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을 구조할 수 있음에도 고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를 구금이나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불구조죄’ 또는 ‘구조거부죄’라고도 부른다. 프랑스는 구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5년 징역형 또는 7만5000유로(한화 약 1억1300만원)의 벌금을 적용한다. 급성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로 주로 가정이 꼽히는 만큼 가족과 이웃에 대한 심폐소생술의 법적 의무를 강화하기도 했다.
더불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응급처치 도중 과실로 피해를 입히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더라도 면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일반인에게 ‘사람을 살릴 용기’를 부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생술을 했다가 못 살리는 상황을 우려하거나, 괜히 나섰다가 오히려 소송에 걸릴 수 있다며 두려워한다. 실제로 도움을 준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도 응급의료법 안에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담고 있지만, 도움을 주는 자를 충분히 보호하진 못하고 있다. 법은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을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22년 6월에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관련해 조규종 대한심폐소생술협회(BLS) 회장은 “외국은 법적으로 주변인이 심폐소생술을 반드시 수행하도록 규정했고, 책임에 대한 부담을 덜어줬다”며 “국내에서 심폐소생술 시행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법적 보호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적 뒷받침이 적극적인 인명구조로 이어질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용기를 강요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기자가 만난 질병관리청 손상예방정책과 관계자는 “모든 걸 법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며 “누군가가 아닌 내가 사람을 살릴 용기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용기를 갖도록 인식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말했다. 용기는 자신감과 연결돼 있다. 자신감은 배움 속에서 불어난다. 정부는 이 같은 기조를 바탕으로 내년에 손상예방센터를 설립하고, 심폐소생술 교육 인프라를 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몫은 관심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내 가족과 친구, 이웃, 동료가 있음을 기억하자. 나의 관심이 누군가의 삶에 있어 소중한 희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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