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호 광주총국장 |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시즌을 앞둔 지난해 12월 25일. 성탄절임에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비계 삼겹살’ 논란이 거셌다. “고향사랑기부금 답례품으로 비계가 대부분인 고기를 받았다”라는 글이 논쟁에 불을 댕겼다.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고기 대부분이 하얀 비계로 된 삼겹살도 소개됐다.
글을 본 네티즌은 “돼지고기냐, 지우개냐” 등의 비난 글을 올렸다. 당시 시행 1년째인 고향사랑기부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쏟아졌다. 해당 지자체인 인천 미추홀구는 ‘답례품 교환·반품’ 공지에도 파장이 커지자 납품 업체와 계약을 종료했다.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해 지난 8월 문을 연 전남 곡성군 옥과면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에서 의사가 아이를 진료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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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 삼겹살’ 사건 후 전국 지자체는 긴장했다. 어설픈 답례품은 지역 이미지까지 타격을 준다는 걸 지켜봤기 때문이다. 반면 일부 지자체들 사이에선 “기부금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양질의 답례품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학습효과도 생겨났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함께 기부금 30% 내에서 답례품을 받는 제도다. 주민등록 주소를 제외한 전국 지자체에 연간 500만원 내에서 기부할 수 있다. 10만원 이하를 기부하면 연말정산 때 100%, 10만~500만원은 15%를 세액공제도 받는다.
시행 3년째를 앞둔 고향사랑기부제의 가장 큰 변화는 다양해진 답례품이다. 시행 초기 농·축·수산물로 시작된 답례품이 관광·체험형 상품을 거쳐 텃밭 분양권이나 부동산 등까지 확대되는 분위기다.
관광·체험형 답례품을 제시한 지자체 중 상당수는 ‘생활인구 증가’를 목표로 설정했다. 기부 지자체의 지역상품권이나 숙박권, 관광지 입장권 등을 주는 방식이다. 생활인구란 주민등록인구와 관광·근무·통학인구 등을 모두 합친 인구를 말한다.
고향사랑기부금은 저출산·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에 맞서는 효과도 크다. 기부금을 활용해 지난 8월 전남 곡성군에 처음으로 개소한 소아청소년과가 대표적이다. 곡성군은 소아과가 없어 광주나 순천까지 오가는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기부금 8000만원을 모아 진료실을 열었다.
지자체들은 “고향사랑기부는 지방을 응원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부를 통해 소멸 위기에 몰린 고향마을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자체 243곳에서 모금한 고향사랑기부금은 총 524억원으로 전년 동기(439억원)보다 19%(85억원) 증가했다.
시행 2년간 고향 기부에 대한 보람을 알아가는 기부자도 늘어나고 있다.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와 함께 답례품까지 덤으로 받는다는 점도 기부금 증가의 요인이 됐다. 각 지자체는 이런 때일수록 답례품과 사용처를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부문화 확산의 분위기에 취해 섣불리 사업을 벌인다면 ‘비계 삼겹살’ 사태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최경호 광주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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