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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그 영화 어때] 증오와 분열만 남은 국가의 최후 ‘시빌 워: 분열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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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108번째 레터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입니다. 어떤 영화는 한 줄의 로그라인 하나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는데요. 이 영화는 ‘미국 전역에서 내전이 벌어진다면?’이라는 도발적인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시간적 배경은 근미래의 미국. 대통령의 헌정 파괴와 독재에 반발해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가 연합해 반란을 일으키고 민주주의가 무너진 디스토피아가 강렬하게 펼쳐집니다.

주인공은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 DC로 향하는 네 명의 기자들입니다. 사진기자인 리(커스틴 더스트)는 눈앞에서 폭탄이 터져도 반사적으로 카메라부터 들이대는 베테랑 종군 기자입니다. “우리는 묻지 않고 기록할 뿐”이라며 냉철한 태도를 유지하죠.

열정 넘치는 신참 기자 제시(케일리 스패니), 유쾌하고 정이 넘치는 취재 기자 조엘(와그너 모라), 몸은 불편하지만 노련하고 연륜 있는 노기자 새미(스티븐 헨더슨)까지 한팀이 되어 대륙을 횡단합니다. 인종, 성별, 나이대까지 서로 다른 네 사람은 미국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조선일보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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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가랜드 감독은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시각에서 전쟁을 비춥니다. 이 영화 자체가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분열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이죠. 영화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증오와 분열만 남은 국가의 최후를 참혹하게 그립니다. 관객은 내전의 원인도 전황도 알 수 없이 그저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지기 때문에 보시면서 ‘왜 이렇게 답답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도 보통의 전쟁 영화처럼 화려하게 피가 솟구치거나 장엄한 음악으로 군인들의 희생을 숭고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인간끼리 치고받는 싸움이 무의미하게 보일 정도로 광활한 미국의 대자연을 중간에 삽입하기도 하고, 총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힙합 음악을 넣어 불쾌함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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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마인드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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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장면 역시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에서 복무한 베테랑이 기술 고문으로 참여했고, 후반엔 실제 전직 군인들이 출연해 전쟁의 공포를 현실적으로 전합니다. 촬영도 카트나 트랙 같은 구조물을 설치하지 않고 소형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어서 종군 기자가 코앞에서 전쟁을 목격하듯 생생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보통 디스토피아 영화를 보고 나오면 안온한 현실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데, 이 영화는 현실이 더 두려워지게 만듭니다. 그만큼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미래를 그럴 듯하게 그린 거겠죠. 두 쪽으로 갈라진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꼭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디 내년엔 증오와 분열이 아닌, 포용과 화합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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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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