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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사설]‘北 공격 유도’ ‘사살’… 아예 나라를 결딴낼 작정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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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수첩에 담긴 경악할 내용 철저 규명해야

동아일보

12·3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4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서울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검찰 호송차로 이송되던 중 취재진이 “NLL 북한 공격은 어떻게 유발하려고 했나?”라고 묻자 취재진을 노려보고 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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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의 핵심 가담자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 ‘북 공격 유도’ ‘오물 풍선’ ‘수거 대상’ ‘사살’ 같은 단어들이 적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노 전 사령관이 머물던 점집에서 확보된 60∼70페이지 분량의 손바닥 크기 수첩에는 ‘NLL(북방한계선) 북의 공격 유도’라는 메모가 담겨 있었다. 또 ‘국회 봉쇄’라는 문구와 함께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이 ‘수거 대상’으로 표현됐고 그중엔 실명이 적시된 이들도 있었다. 나아가 이들에 대한 ‘수용 및 처리 방법’에 대한 언급은 물론 ‘사살’이란 표현도 있었다고 경찰은 확인했다.

노 전 사령관 수첩에 적힌 내용은 그 하나하나가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을 만한 것들이다. 물론 그 작성 시기나 실행 계획 여부, 나아가 어느 선까지 공유된 것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경찰도 “단편적인 단어의 조각이라 전체 맥락까지 잘못 해석할 우려는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국회 봉쇄나 주요 인사 체포 등 수첩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실행되거나 시도됐다는 점이 드러난 마당이다. 불명예 전역한 군인의 머릿속에 있던 상상만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 수사 당국이 철저하게 그 실체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NLL에서 북한의 공격을 유도하겠다는 문구에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내란(內亂)죄에 더해 형법상 외환(外患)죄 중 일반이적죄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사실 북한을 자극해 대남 공격을 유도하고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삼고자 했다는 ‘북풍 공작’ 의혹은 이미 제기됐던 것이기도 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군 지휘부 전술토의에서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맞선 원점 타격을 강하게 역설한 것으로 드러났고, 야당에선 군이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평양 상공에 무인기를 보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비상계엄 모의가 실제로 전개됐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수거 대상인 정치인이나 판사, 언론인 등을 수용 시설에 가두고 어떻게 하려던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계엄 포고령이 공언했던 ‘척결’이나 ‘처단’이 실행 단계에서 ‘사살’로 나타났다면, 더욱이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 진짜 반국가세력인 북한의 공격을 유도했다면 대한민국이 온전히 ‘나라다운 나라’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적어도 그간 누리던 국제적 위상은 땅에 떨어져 휴전선 이북이나 아프리카 독재국가 취급을 받는 처지가 됐을지 모른다.

윤 대통령은 이미 작년 말부터 주변 측근들에게 ‘비상조치’를 들먹였다고 한다. 처음엔 안 된다고 반대했다던 이들 중 일부는 결국 대통령의 무모한 결정에 앞장서거나 마지못해 실행에 나섰다. 특히 한 줌도 안 되는 그 무리는 근거 없는 음모론과 주술적 맹신에다 별도의 비선 조직까지 꾸리며 일그러진 충성심을 보탰다. 자신의 행동이 낳을 국가적 국민적 피해는 안중에 없었다. 그들은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내세워 국가와 국민을 버렸다. 이제 추궁과 심판, 단죄의 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궤변과 억지 뒤에 숨은 최종 책임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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