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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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가 생전 썼던 왕관에는 105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근대 이전 세계 최대 다이아 산지였던 인도 광산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인도 다이아가 고갈될 즈음인 19세기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다이아 광산이 발견됐다. 이후 10년간 남아공에서 캔 다이아가 그 이전 수백 년 인도 생산량을 능가할 만큼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공급이 넘치며 가격이 하락했다.
▶위기에 몰린 다이아 업계를 구한 이가 영국 사업가 세실 로즈였다. 로즈는 아프리카의 대형 광산들을 사들여 그 유명한 드비어스사(社)를 창립했다. 드비어스는 한 줌 귀족 시장을 포기하고 다이아몬드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 결혼 반지에 금이나 은 대신 다이아를 끼우는 아이디어가 대박을 냈다. 1947년 선보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는 광고는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는 청춘 남녀를 매혹했다. 오늘날 미국 여성 넷 중 셋은 다이아 반지를 끼고 예식장에 들어간다. 결혼반지를 되파는 것이 사랑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면서 엄청난 양의 다이아가 장롱 속에 갇혔다. 덕분에 많이 팔리면서도 가격이 유지됐다.
▶그랬던 다이아 가격이 추락하고 있다. 2022년 3월 최고점을 찍은 후 지금까지 40%가 빠졌다. 가장 큰 이유는 랩 그로운(Lab Grown) 다이아몬드의 등장이다. 랩 그로운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감정서가 없으면 전문가조차 천연 다이아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분·경도·굴절률에 차이가 거의 없는데 가격은 천연의 20% 수준이다.
▶가성비 따지는 청년 커플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할리우드 배우 메건 마클도 2018년 영국 해리 왕자와 결혼할 때 랩 그로운 다이아를 착용했다. 2010년대 연 10억달러였던 시장 규모는 2030년대엔 500억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에 이어 다이아몬드 2위 소비국인 중국이 대거 금으로 갈아탄 것도 가격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인조 다이아 다음 타깃은 금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고대 이집트에서 연금술이 탄생한 이후 인류는 실험실에서 금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 땀을 흘렸지만 허사였다. 그런데 핵분열·핵융합이 가능해지며 마침내 인공 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다만 금 1g을 만들려면 전기 먹는 하마인 입자가속기를 5000년 넘게 돌려야 해 당장 경제성은 없다. 그래도 누가 알겠는가. 옥의 빛깔에 반해 흙을 굽기 시작한 게 자기의 탄생을 불렀다. 다이아몬드가 실험실에서 먼저 만들어졌지만, 싸고 질 좋은 랩 그로운 금이 곧 나올지 모른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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