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혁 사회부 기자 |
하찮고 의미 없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참으로 어렵다. 능률도 떨어진다. 특히 타인들이 자신의 의미를 찾으려 할 때 더욱 마음이 쓰인다. 지금이 그렇다. 계엄정국 때문이다. 시민 대다수가 생각지도 못한 계엄이라는, 의미 없는 일에 시간을 쓰고 있다.
탄핵 취재만 두번째다. 지난 2017년 3월 막내 기자로서 헌법재판소 한복판에서 대통령 파면을 목도했다. 그리고 기록했다. 당시 탄핵은 '의미'가 있었다. 시민들은 직접 뽑은 대통령의 자질을 의심했다. 시민이 뽑은 입법부는 움직였고, 사법부는 판단했다. 해외에서는 민주주의의 산교육 현장이라고 칭송했다.
지금은 다르다. 의미가 없다. 정치의 본령은 사라졌다. 분쟁을 조정하고 의견을 합치하는 기능이 실종됐다. 협의가 안 되니 대통령은 어깃장에 무력을 동원했다. 누구도 예상 못한 계엄령이 나왔다. 시민들은 이를 수습하기 바빴다. 자신들이 찾던 의미를 내려놓고 대통령의 말이 내란 혐의가 맞는지 찾아봤다. 생업을 제쳐두고 집회에 나섰다. 경찰과 검찰의 계엄 수사 경쟁을 스포츠 경기를 보듯 관람했다.
그렇게 의미 없는 나날이 흘러가고 있다. 12월 3일 이후 우리나라는 멈췄다. 수많은 기업체는 영문도 모른 채 해외 업체와의 계약을 파기당했다. 외국 투자자들이 모두 떠나버린 주식 시장에서는 유명 정치인의 테마주만 상한가를 기록했다. 유수의 펀드매니저조차 정치테마주 푼돈 벌이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 답이 없다"며 해외로 부를 유출하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취업준비생은 멈춘 입사전형 일정을 기다릴 뿐이다. 리더를 잃어버린 관료들은 진취적 업무를 멈춘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 탄핵정국을 취재하는 나는 무의미한 기사만 반복해 올리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인가?
기자는 사회의 걱정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다.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수년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자들을 빼돌렸다. 지난 12일 검찰은 국가 핵심기술인 삼성전자의 18나노 D램 반도체 공정을 가로챈 전직 삼성전자 부장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미국은 전통적인 국방 영역에서조차 실리콘밸리의 조력을 받고 있다. 전쟁터에 드론이 날아다니고 인공지능(AI) 기술이 테러리스트의 은신처를 파악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의 걱정은 이렇게 산더미인데, 계엄이라는 낡고 닳은 관념이 우리의 걱정을 대신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걱정거리는 지금과 앞으로의 미래다. 생존 방편과 불가피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다. 40년 넘게 지난 박물관 속 '계엄'이 감히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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