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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이어지는 탄핵 사태를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나라가 일본이다. 문재인 대통령 때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사상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를 보낸 일본은 극적으로 이를 봉합한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결단 덕분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3월 정부 차원의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으며 역사 문제로 교착 상태에 있던 한일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내부에서는 한국 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를 밀어붙인 윤 대통령의 뚝심을 높게 평가해왔다.
윤 대통령의 한일 관계 개선 노력 이후 양국 관계는 극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우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양국은 무려 13차례에 이르는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일관계 훈풍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언, 이어진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로 방향성을 잃어버렸다. 당장 양국 고위급 방문부터 속속 취소되는 상황이다.
2025년 1월 방한을 검토했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계획은 계엄과 탄핵 사태로 무기한 연기됐다. 이시바 이시바 총리는 방한 기간 때 사도광산 추모식과 관련된 사안을 설명하고, 2025년 4월 개최되는 오사카 엑스포 초청장도 전달할 계획이었다. 또 윤 대통령을 일본에 국빈으로 초청하는 계획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없던 일이 될 전망이다. 일한의원연맹 회장인 스가 요시히데 전 일본 총리의 방한도 국내 정치 불안 상황으로 취소됐다. 그는 2024년 12월 15~16일 방한해 한일의원연맹 회장인 주호영 국회부의장 등과 만나 2025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두고 교류 증진을 위한 기념사업 개최 등 협력관계를 논의할 계획이었다. 2024년 말 한국 방문을 추진했던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도 방한 일정을 연기했다. 카운터파트너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사직하면서 상대방이 없어진 데다 탄핵 정국으로 인한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日 언론 “한일 외교 사실상 정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일본 언론도 향후 한국 정치 움직임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 대부분은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해 온 윤 대통령의 직무가 탄핵안 가결로 정지되고 정국 혼란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그간 구축해 온 한일·한미일 협력 기조가 흔들릴 수 있게 됐다고 우려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한일 외교는 사실상 정지 상태가 됐다”며 “정상 간 의사소통을 지렛대로 삼아 관계를 개선해 왔지만, 과거로 퇴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 중국이 양국에 개별적 대응을 강화해(한국과 일본을) 미국으로부터 떼어 놓으려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고 덧붙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일본 정부에 외교 전략 재검토 압박이 강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2025년 국교정상화 60주년에 맞춰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대하는 방안을 물밑에서 검토하고 있었다”며 “약 20년 만인 한국 대통령의국빈 방일을 통해 관계 강화를 내외에 보여주려 했지만 실현되기 곤란한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특히 이번 사태가 양국 관계뿐 아니라 북한, 중국, 미국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도 우려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한미일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을 염두에 두고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면서 “당분간 우려되는 것이 대중 전략에 대한 영향”이라고 해설했다.
차기 정권에 대한 불안감 커
마이니치신문은 한미일 협력 체계가 불투명해지고 이에 따라 힘의 공백이 생기면 북한과 중국이 군사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탄핵소추안에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했다’는 문구가 처음에는 담겼다가 삭제된 점에 주목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를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가) ‘윤 대통령 옹호’나 ‘내정 간섭’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있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시바 총리는 계엄 사태 이후 “중대한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며 한일관계 중요성을 원론적으로 강조하는 발언을 거듭해 왔다.
일부 일본 언론은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을 결정해 대선이 치러질 것을 염두에 두고 한국 정치권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와 관련해 마이니치는 윤 대통령만큼 일본 요청에 확실히 대응해 준 한국 대통령은 없었다는 집권 자민당 관계자 발언을 소개하면서 일본 정부 내에서 “진보계 정권이 들어서면 한국은 또 역사 문제로 골대를 옮기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이 나온다고 전했다. 아사히신문도 계엄에 이은 탄핵 사태에 대해 “배경에는 한국 정치의 보수와 진보 간 격한 이념 대립이 가져온 사회 분단이 있다”며 “이를 더욱 강화하는 소셜미디어 영향도 크고 일본도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이어 “다른 의견을 힘으로 배제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며 “이 사태를 계기로 그 점을 새삼 상기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2025년 예정된 양국 간의 각종 행사와 협상 등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당장 영향을 받는 것은 2025년 6월로 예정된 양국 국교정상화 60주년 관련 행사다.
한일 관계에 있어서 극적인 계기 중 하나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가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꼽는 사람이 많다. 이의 연장선을 일본 정부가 고민했지만 이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여기에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는 대륙붕 ‘7광구’ 공동 개발 협정도 2025년 6월에 종료된다. 2024년 9월 관련 회의를 39년 만에 개최했는데 앞으로 협정 존폐 가능성이 걸려 있다. 경제성이 있다고 보는 한국과 달리 그렇지 않다고 보는 일본이 맞서면서 협정 종료가 가능해지는 2025년 6월 이후 협정 유지 여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 또한 한국 쪽 사정으로 어려운 상황이 됐다.
여기에 2024년 파행을 겪었던 사도광산 추도식이 2025년에도 7~8월경 개최될 예정이다. 양국 간 순조로운 협상이 필요한 부분인데 일본 과거사 문제에 민감한 현재의 야당이 집권할 경우 어려움이 예상된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벌여놓은 일도 많고 앞으로 시작해야 할 일도 많지만 내부에서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라며 “일본이 먼저 움직일 경우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커 최대한 자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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