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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사각지대 놓인 13세 미만 ‘영 케어러’…“연령 얽매이지 않은 대책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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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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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이동수(가명) 군은 초등학교 3학년 동생 동민(가명) 군과 함께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돌보며 생활하고 있다. 어머니는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걷기 어려운데 안면마비로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머니가 장애인 활동보조사의 지원을 받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의 돌봄과 집안일이 두 형제의 몫이다. 육상선수를 준비 중인 형이 집을 비운 날, 늦은 밤 갑자기 어머니가 통증을 호소하자 동민 군이 학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에게 전화해

“어머니를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도움을 청한 적도 있었다.

● 13세 미만 ‘가족돌봄 아동’은 사각지대

동수와 동민 형제처럼 가족돌봄을 담당하는 아동·청소년을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영 케어러)이라고 부른다. 현재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과 기준은 없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2023년 이들에 대한 체계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중앙정부 차원에서 진행한 첫 실태조사에서 조사 대상을 13~34세로 설정한 바 있다.

또 정부는 올해부터 가족돌봄 청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연간 200만 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여기서도 대상자는 13세 이상으로 한정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3세 미만인 가족돌봄 아동은 관심과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이 2022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 초록우산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7~24세 1494명 중 686명(46%)이 “가족돌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는데 686명 중 157명(23%)은 초등학생이었다. 이 조사에서 가족돌봄 아동은 가장 힘든 점으로 ‘심리정서적 어려움’을 꼽았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가족을 돌보는 일에서 잠시 벗어나 있을 때도 끊임없이 돌봄 대상에 대해 걱정하는 심리가 두드러졌다”며 “돌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 같은 심리정서적 어려움이 더 심각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반면 선진국 상당수는 일정 연령 미만이면 모두 가족돌봄 아동·청소년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초록우산에 따르면 영국은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의 기준을 18세 미만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호주는 25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 “도움 필요한 상황인지 인식 못해 더 위험”

특히 가족돌봄 아동들은 외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록우산이 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족돌봄 아동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를 대상으로 이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사(복수 응답)한 결과 “아동이 자신을 가족돌봄 아동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지원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64.3%)”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또 “가족돌봄 아동의 개념 정의 및 지원 기준이 모호하다”(60.7%), “가족돌봄 아동 맞춤형 서비스 혹은 연계 가능한 지원 제도가 부재하다(46.4%)” 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가족돌봄 아동에 대한 체계적 지원 및 보호를 위해선 법적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초록우산 관계자는 “관련 법이 없으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근거가 없고 이는 곧 가족돌봄 아동 발굴 및 지원에 있어 실질적 어려움과 한계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가족돌봄 아동 지원을 위한 법안 6건이 발의된 상태다.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을 연령대로 구분해 지원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법안 제정안 5건과 현행 아동복지법을 바꿔 가족돌봄 아동을 지원체계 안에 포함하는 개정안 1건이다. 하지만 아직 입법에 속도가 나진 않는 상황이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가족돌봄 아동은 또래와 함께 뛰놀거나 미래를 준비하는 당연한 일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와 국회가 연령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최대한 빨리 가족돌봄 아동을 발굴하고 이들이 돌봄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가 보호체계 안에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세심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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