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언어모델 AI 언어 모호성, 인터넷 편견·오류와 달리
검증된 과학적 사실 학습한 AI, 뛰어난 창의성 발휘
노벨화학상 단백질연구 등 새 과학적 방법론으로 등극
[서울=뉴시스]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인공지능(AI) 알파폴드가 생성한 단백질의 구조도. (출처=네이처) 2024.12.24. *재판매 및 DB 금지 |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인공지능(AI)의 큰 문제점으로 꼽히는 환각 현상(hallucination)이 오히려 과학 발전을 크게 촉진하는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AI가 암 치료, 신약 개발, 의료 기기 개발, 날씨 현상 규명에서 기존에 상상하지 못하던 방법을 제시해 노벨상을 받을 기회를 높인다.
에이미 맥거번 미 연방AI연구소장은 환각 현상이 “큰 문제라는 인식이 많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들을 탐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과학은 대단히 분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생각들이 많지만 실제로는 예감과 추정이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 과학철학자 고 폴 파이어아벤트가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이라고 부른 현상이다.
AI 환각 현상은 과학적 방법론이 됐다. 몇 년씩 걸리던 과정을 며칠, 몇 시간,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게 된 덕분에 과학자들이 손쉽게 새로운 경지를 열어갈 수 있게 됐다.
AI의 상상이 큰 발견으로 이어져
과학자들이 생성형 AI에 특정 주제를 입력하고 AI가 그 정보를 가공하도록 주문하면 환각 현상이 일어난다. 결과물이 탁월한 것일 수도, 전혀 엉뚱한 것일 수도 있지만 큰 발견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다.
미 워싱턴대 데이비드 베이커 교수가 지난 10월 생명 현상의 핵심인 단백질의 구조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상위원회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방법을 제시한 그의 연구가 “불가능을 실현한 것”이라고 수상 이유를 밝혔다.
베이커 박사는 인터뷰에서 “맨 바닥에서 단백질을 만드는데” AI의 폭발적 상상력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 기술 덕분에 자신의 연구소가 약 100건의 특허를 받았고 암 치료제, 바이러스 치료제 등 상당수가 의학에 쓰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바이오테크 회사 20여 곳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면서 자신의 연구실이 만들어낸 자연에 없는 새로운 단백질이 “1000만 종”이라고 밝혔다.
AI 환각 현상 용어 두고 찬반
환각 현상이 잘못된 용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생성형 AI의 상상은 착각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의 추측과 같다는 것이다. 이들은 환각 현상이라는 말 대신 다른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환각 현상이라는 용어가 과학자들이 기피해온 LSD 등 마약의 환각을 연상시켜 오해를 산다며 이 때문에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 AI가 제시한 답변을 잘못된 답변으로 간주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과학에서 AI의 상상은 챗봇의 환각 현상과 달리 효용이 크다. 인간 언어의 모호성과 인터넷의 오류와 편견이 뒤섞이지 않은, 자연과 과학에서 입증된 사실에 근거한 상상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미 칼테크대 수학 및 컴퓨터 교수 아니마 아난드쿠마르를 “AI에 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다”면서 검증된 사실에 바탕해 정확성이 매우 높은 결과를 낸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대언어모델(LLM) 챗봇은 스스로 제시한 발언이나 주장을 검증할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AI의 온갖 상상을 물리 현상의 구체적 사례들로 검증한다고 했다.
아난드쿠마르 박사 연구팀은 최근 AI의 환각 현상을 활용해 요로감염을 크게 줄이는 새로운 카테테르(catheter, 도뇨관)를 만들었다. AI가 상상한 수많은 카테테르 형태 중에서 고른 것이라고 했다.
새 카테테르는 내부가 톱니와 같은 돌기가 있어 박테리아가 요로를 통해 방광까지 도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아난드쿠마르 박사는 새 카테테르를 곧 상용화할 계획이다. 그는 환각 현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반대한다.
반면 환각 현상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과학자들도 있다.
메모리얼 슬로언 케터링 암 센터 하리니 비라라가반 소장도 AI의 환각 현상이 의학 영상의 선명도를 높인다고 밝혔다. 그는 논문에서 “환각 MRI”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텍사스 오스틴대 연구자들도 로봇 항법 개선을 연구한 논문에 “환각 현상의 교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베이커 박사와 노벨 화학상을 공동수상한 구글의 AI 개발 회사 딥마인드의 수시미트 콜리 과학책임자는 2016년 AI가 바둑 챔피언 이세돌을 꺾은 일화를 예로 들었다. AI가 둔 37수가 “실수였다고 생각했는데 천재적 한 수였음이 밝혀졌다”면서 “AI가 엄청난 직관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오클라호마대 기상학 및 컴퓨터 과학 교수인 맥거번 AI연구소장은 환각 현상이라는 용어 대신 과학에서 익히 사용돼온 “확률적 배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일기 예보에서 AI가 수천 가지의 다양한 변수를 만드는 확률적 접근을 함으로써 극단적 열풍을 초래하는 요인 등을 발견할 수 있게 하는 “유용한 도구”라고 했다.
정체된 과학 발전 돌파구 역할
과학의 발전 속도가 지체된다는 우려가 최근 커져왔다. 수십 년 동안 획기적 발견의 사례가 줄어든 때문이다. AI가 과학 발전에 돌파구를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노벨화학상 수상자 베이커 박사는 태양에너지를 활용하는 단백질, 에너지 효율이 탁월한 공장, 지속가능한 세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노벨 화학상 공동 수상자 딥마인드의 콜리 박사는 AI가 생명의 신비를 풀고 질병을 고치는 새로운 기반을 만들어 인류의 건강과 수명 연장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jkang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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