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수첩에 ‘북풍 시도’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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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역이 현역 조종…해이한 군 기강 민낯 노출
지난 20일 오후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 1층에 위치한 노상원 전 사령관이 함께 운영했던 곳으로 지목된 점집의 모습.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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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국가수사본부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북한의 군사 도발을 유도하는 ‘북풍 공작’ 시도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은 노 전 사령관이 불명예제대 후 무속인으로 활동하던 경기도 안산시 점집에서 ‘NLL(북방한계선)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가 적힌 수첩을 확보했다. 다만 실제 행동이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한때 국군의 핵심 요직을 맡았던 예비역 장성에게서 이런 발상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육사 3년 선배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도와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만일 계엄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군사적 충돌을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중범죄다. 외부 세력을 끌어들여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는 외환죄로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헌법 77조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번 비상계엄 주동자들도 북한의 도발이 없는 상황에선 계엄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 전 장관은 북한의 오물풍선에 원점 타격으로 대응해 북한을 도발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비상계엄 관련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흐트러진 군의 기강도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예비역 장성이라곤 하나 현재는 엄연히 민간인인 노 전 사령관이 현직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대령들을 햄버거집으로 불러 계엄을 모의했다는 증언은 너무나 비상식적이어서 할 말을 잃게 한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당일 김 전 장관을 만난 뒤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정보사 사무실에 전차부대장까지 대기하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유사시 적진에 침투하도록 고강도 훈련을 받은 특수부대원뿐 아니라 군 핵심 전력인 전차부대까지 민간인이 쥐락펴락했던 셈이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선 ‘국회 봉쇄’와 ‘사살’ ‘정치인·언론인·종교인·노조(노동조합)·판사·공무원 등 수거 대상’이란 메모도 확인됐다. ‘수거’란 표현은 체포를 의미할 것이다. 일부 대상자의 실명도 수첩에 적혀 있었다고 한다. 아무리 계엄 상황이라도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는 민간인을 체포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건 반헌법적인 행위다. 특히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 판사의 체포는 과거 군사정권 때도 없었던 발상이다. 노 전 사령관이 배후에서 현역 군인들을 시켜 정식 편제에도 없는 정보사 수사2단이란 조직을 꾸리고 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철저한 수사로 각종 의혹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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