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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자’에서 ‘은밀한 보호자’가 된 비밀경찰···연극 ‘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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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영화 연극으로 옮겨

1월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경향신문

연극 ‘타인의 삶’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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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의 비밀경찰 비즐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다. 그는 비밀경찰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심문 기법을 강의할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 수호의 첨병 역할을 모범적으로 수행한다.

비즐러는 유명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타 커플의 감시를 맡는다. 도청을 통해 이 커플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본다. 작품 활동, 사상의 궤적은 물론 성생활 같은 사생활까지 모두 감시 대상이다.

다음달 19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하는 연극 <타인의 삶>은 동명의 영화에 기반한 작품이다. 영화는 200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에서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아 지난 10월 재개봉하기도 했다.

영화 속 비즐러와 드라이만 커플의 공간은 분리돼 있다. 비즐러는 청각만으로 드라이만 커플의 삶을 상상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연극은 달리 표현했다. 비즐러는 마치 유령처럼 드라이만 주변을 떠돌며 삶을 관찰한다.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삶을 관찰하면서 동화되는 상황이 조금 더 직관적으로 표현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연극 역시 ‘품위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비즐러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뿐, 인간에 대한 악의를 가졌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드라이만은 체제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스타 작가로서의 명예를 누린다.

다만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에 저항하느냐 여부가 중요하다. 드라이만은 동료 예술가가 권력과의 불화 끝에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격분해 자신의 안락한 생활을 위험에 빠트릴지 모르는 선택을 한다.

드라이만의 선택은 비즐러의 얼어붙은 양심에도 불씨를 던진다. 비즐러는 자신이 피감시자에게 동화되고 있음을 애써 부정하면서도, 드라이만의 브레히트 시집을 훔쳐 읽는 등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권력의 편에서 드라이만을 감시하던 비즐러는 어느덧 예술가의 은밀한 보호자가 된다.

이런 극적인 변화가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된 건 연출의 힘이다. 통일 이후 드라이만이 비즐러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사를 표하고, 비즐러가 이를 알고 감격해하는 장면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뭉클함을 안긴다. 무대 양편에서 배우들이 대기하는 의자, 천장에서 떨어지는 도청장치 등 최소한의 소품만으로 충분한 극적 효과를 낸 점도 인상적이다.

비즐러(윤나무·이동휘), 드라이만(정승길·김준한), 크리스타(최희서)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은 조연들이 일인다역을 소화했다. 올해 LG아트센터 연극 <벚꽃동산> 등에 출연한 배우 손상규가 각색하고 처음으로 연출까지 맡았다. 이동휘, 김준한의 연극 출연도 이번이 처음이다.

경향신문

연극 ‘타인의 삶’의 한 장면. 프로젝트그룹 일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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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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