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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월요 초대석]“비상계엄, ‘공격성’이 부메랑처럼 돌아온 자기 파괴적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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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정신분석가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 분노를 축제로 승화시킨 탄핵 집회

우리 민주주의 밝은 미래 봐… 폭력시위는 트라우마 키웠을 것

‘아군 아니면 적’ 이분법 만연… 정치 지도자 理想化 않아야

건강한 개인주의 도약하려면… 세상 읽는 문해력 교육 제대로

동아일보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정신분석가)는 “이번 비상계엄 사태라는 위기를 건강한 개인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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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밤 국회에 무장 군인이 들이닥치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불안에 시달렸다. 반헌법적 비상계엄이 준비되고 실행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분노도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받은 충격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과거의 것이 된 줄로만 알았던 ‘내란’이나 ‘대통령 탄핵’ 같은 단어를 우리 사회가 다시금 마주하는 데엔 무의식적 배경이 있지 않을까. 국제정신분석협회가 인증한 국내 최초의 정신분석가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73)를 19일 만났다. 정 교수는 “분노를 추스르고 이번 사태를 우리 사회가 도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충격이 컸습니다. ‘계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저는 3일 밤 일찍 자고 다음 날 일어나니 계엄이 일어나고 해제까지 돼 있더군요. 국민이 균일한 집단이 아니니 받아들이는 것도 달랐을 겁니다. 앞선 험난한 세월을 겪은 세대는 충격보다는 ‘안타깝다, 어리석다’는 기분이 더 크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던 시대에 태어난 세대가 더 놀랐을 것이라고 봅니다.”

―‘탄핵 촉구’ 집회에선 케이팝이 불리고 응원봉이 등장했습니다.

“일상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이번 사태를 만나 적지 않은 이들이 불안과 분노를 겪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집회 현장을 콘서트장 같은 축제로 만들어 놀이의 형식으로 승화시키며 현명하게 충격을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이 위기를 대처하는 역량과 우리 민주주의의 밝은 미래를 확인하게 됩니다. 만약 그 분노의 에너지가 미국이나 프랑스의 시위처럼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어졌다면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정신적 외상의 양이 늘어나게 됐을 겁니다. 집회를 보며 저는 우리 전통문화, ‘탈춤의 해학’을 떠올렸습니다. ‘놀이’는 정신분석에서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놀 줄 모르는 사람은 변화할 수 없습니다.”

―정치적 긴장이 지속되면 국민의 정신건강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우울, 불면 같은 증상이 늘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급성보다 만성 스트레스가 건강에 훨씬 더 해롭습니다. 정치인들이 빨리 해결을 해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 긴장 상태를 증폭하고 만성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피분석자로 경험한 바가 없으니 대단히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정신분석 이론으로 일반적인 해석을 한다면, 특정 직역에서 오래 일했던 경험에서 벗어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지난 직역(검사)에서 굳어진 판단, 행동 방식과 세상을 읽어내는 패턴이 직역과 역할이 (대통령으로) 달라진 후에도 그대로 옮겨와서 표현됐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를 정신분석에서는 ‘전이(轉移) 현상’이라고 하며 정신분석이 아닌 인간관계, 사회 현상에서도 흔히 일어납니다. ‘위반자는 처단한다’는 계엄 포고령도 그런 맥락으로 읽힙니다.”

―그래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되는 면이 있습니다.

“공격성은 정신분석에서 다루는 심리 현상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정신의 역동(力動)으로 살펴보면 자살과 타살은 공격성의 관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봅니다. 적을 공격하다가 그 공격성이 방향을 바꿔서 자신을 향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파괴적 행위를 하게 됩니다. 무기를 던졌는데 다른 사람을 죽이면 타살이고 부메랑처럼 돌아와 자기가 맞으면 자살이 되는 거지요. 딱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은 정치 갈등이 유난히 거센 것 같습니다.

“냉소적으로 들릴 수는 있겠으나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지나친 측면도 있습니다. 영국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컷(1896∼1971)은 좋은 어머니는 완벽한 어머니가 아니라 ‘대충 괜찮은 어머니(good-enough mother)’라고 했습니다. 국민과 정치 지도자의 관계도 마찬가지인데, 현실에선 불가능한 완벽한 지도자를 꿈꾸면 낙망(落望)과 좌절을 너무 일찍, 너무 세게 느끼게 됩니다. ‘완벽한 지도자’는 환상일 뿐입니다. 심리적 거리를 적절하게 지키면서 객관적으로 ‘대충 괜찮은 지도자’를 양성하고 선택하려 하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과 행동이 될 것입니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요.

“지도자를 너무 이상화(理想化)하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어릴 적엔 ‘우리 부모가 세상에서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자라면서 결점도 알게 되고 탈(脫)이상화를 하는 게 정상적인 성장 과정입니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자신의 부모를 완벽하다고 이상화한다면 오히려 부모-자식 사이에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 자신이 따르는 정치 지도자가 명백한 잘못을 해서 법과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는데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된다면 안타깝고 고통스러워도 자신의 마음을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정치적 양극단에서 감정적 반응과 공격이 격렬한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의 개념으로 풀어보면 갓난아기의 마음에는 배고플 때 즉시 젖을 주는 ‘좋은 엄마’가 있고, 돌봐주지 않는 ‘나쁜 엄마’가 따로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기가 자라면서 따로 생각하던 두 사람의 엄마를 한 사람으로, ‘아, 한 엄마 속에 좋은 엄마와 나쁜 엄마가 같이 있구나’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통합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아기는 어른이 돼도 세상을 흑(黑)과 백(白)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따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사람들을 ‘아군 아니면 적’으로 나누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나 지지하는 지도자의 흠결은 못 보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에선 이러한 심리 기제를 ‘분열(splitting)’이라고 하는데,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고 봅니다.”

―중간지대가 넓어야 좋다는 뜻인가요.

“돌아가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대한민국엔 회색분자가 많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회색조차도 짙고 묽은 정도가 수없이 다양한데,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회색 자체를 용납하지 않으니 싸울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됩니다. 선명하지 않으면 잘못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비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권이 마치 ‘흑백논리’가 선명하고 최선인 것처럼 최면을 걸어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그 함정에 빠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탓일까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엄청나게 짧은 시간 안에 이뤘지만 심리적 측면에선 왕조시대의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 사회로 넘어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사는 집에는 담장과 대문,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면서도 마음의 경계 침범은 쉽게 허용합니다. 그러니 ‘가짜 뉴스’나 선동에 휩쓸립니다. 사회적 갈등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흑백논리에 휩쓸리면 우리가 지금껏 힘들여 쌓아 온 것들이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국방, 경제, 의료가 이미 무너지고 있잖습니까.”

―계엄군으로 투입된 이들도 정신적 외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군인은 명령을 따르도록 훈련된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소극적으로 움직이면서 계엄의 실패를 유도한 이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외부의 비난이 있다면 멈춰야 합니다. 정신적 문제가 나타나는 이들에겐 국가가 전문적인 치료를 제대로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 문제를 풀기 위한 장기적 해법이 있다면….

“문해력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문해력이 작가에게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세상을 읽고 쓰는 능력’은 모두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현상을 두고 극단적으로 분열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건 읽기가 제대로 안 되는 탓입니다. 또 상대방의 단점만 읽을 뿐 장점을 읽어내지 못하니까 합리적 통합 방안을 제안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집니다.”

―이번 사태를 도약의 기회로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단주의에 물들어 ‘투사’(投射·받아들일 수 없는 부정적인 생각 등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면서 ‘네 탓이다’, ‘누구누구 물러가라’만 외쳐선 우리가 진일보하기 어렵습니다. 양복 입은 정당인, 정치인들도 도포 입은 조선시대 당파들과 무엇으로 차별화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합니다. 이번 사태를 이기주의가 아닌 개인주의가 성장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상대를 억압하고 공격하기보다는 공동체 개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시선을 안으로 돌려 자기 성찰을 하는 이들이 늘어야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고, 차세대 지도자도 그런 이들 사이에서 나와야 할 겁니다.”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정신분석가
△1976년 서울대 의과대학 졸
△1985∼2017년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1999∼2003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
△2004년∼ 국제정신분석협회 정회원
△2009년∼ 미국정신분석협회 정회원
△2009∼2017년국제정신분석협회 한국스터디그룹 창립회장
△2021년 현대정신분석아카데미 공동 창립
△저서: ‘프로이트의 의자’(2009년) 등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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