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부정선거론에 잠식된 대통령의 직을 즉각 정지시켰지만, 앞으로 우린 음모-계엄의 대가를 무수히 치를 수밖에 없다. 가상세계에 머물렀어야 할 음모가 현실세계에 유통되고 실현되는 순간, 반민주적 극단주의자들은 봉기할 힘을 얻는다. 실제로 윤석열 담화는 그들을 직접 호명하며 ‘반국가 세력’에 맞설 것을 요청했다. 그런 이유로 선거부정-계엄은 머지않아 물리적 갈등을 동반한 내전의 신호탄이 될지 모른다.
윤석열의 군대, ‘아스팔트-태극기’는 합리성 세계 바깥에서 대안 세계를 구축했고 기어이 다시 공적 무대에 등장했다. 부정선거론과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의 귀환과 결집을 보며 민주 대 반민주 식의 거악과의 대결 구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정치·운동을 선악 간 대결로 바라보고 모든 것을 이항대립 구도로 구조화한 세계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음모-계엄 사태의 배경 중 하나라면?
이 세계 속 정치는 진리 대 진리의 대결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탈정치화되거나 곧장 전쟁이 된다. 필연적으로 새로운 정치적 대안이나 제3, 제4의 길을 억압하기 때문에 총력전으로 치닫는 경향을 띤다. 더군다나 전부 또는 전무로 귀결될 승자독식 룰은 총력전의 강도를 격화시킨다. 패배는 곧 몰락인 탓에 “선거에 패배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기초는 쉽게 위협받을 수 있다. 전쟁이 정치를 대체한 세계는 불복을 넘어 선거부정, 사법부정 등 음모의 세계와 친화적이다.
우린 이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불행히도 폭로와 징치의 시간, 검찰과 사법의 시간이다. 적과의 전쟁에 방해되거나 부수적인 것들은 또다시 ‘나중에’로 미뤄질 것이다. 그럼에도 시민사회운동은 탄핵광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대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광장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두제, 승자독식 구조를 바꾸는 ‘제7공화국’ 개헌·개혁 논의도 잇따르고 있다. 여전히 안갯속 중과부적이지만, 전쟁 대신 우리가 택할 길은 의외로 분명하다. 1년 가까이 공장 옥상에서 농성 중인 구미의 노동자들, 계엄에 준하는 한파를 맞이할 홈리스, 탄핵 외 다른 목소리를 억압당했던 전장연 활동가들이 그 길을 더욱 선명히 하고 있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