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혁명검찰부장직을 지낸 박창암(1923~2003)은 활동 당시 일체의 청탁을 거절하면서 사심 없이 일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부정축재자들을 처단하고 있을 때의 일화다. 모 재벌 인사가 그를 찾아와 수십억 원에 달하는 돈 보따리를 내놓았다. 그 인사가 "이 거액을 어떻게 소문나지 않게 간수할 수 있느냐"고 묻자 박창암은 재산 도피 요령을 가르쳐주겠다며 만주 지도를 꺼냈다. 그러더니 "이왕에 돈을 내놓으려면 우리나라가 잃어버린 만주 땅을 살 만한 돈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박창암은 5·16 군사정변 당시 육사생도의 혁명지지를 선동하면서 박정희 당시 소장의 눈에 들었다. 일각에서 혁명지지 행진을 전두환 당시 육군 대위가 건의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육사생도대장이었던 박창암이 직접 시가행진을 기획했다는 증언이 있다. 혁명이 성공하자 군인의 혁명 공약대로 민정 이양을 주장하다가 반혁명사건으로 물러났다. 그 후 농사를 지으며 고구려, 한민족 뿌리 연구에만 몰두한다고 했다.
[전민조 다큐멘터리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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