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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외교비사㉒] 美, 전두환 내란에 발끈..."민간 정부만 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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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질서 유지하고 민주 발전 지속해야"
"한국 입장은 실천을 통해서만 확인될 것"
주한 美 대사, 정부 면전에 "피곤해졌다"


더팩트

외교부는 매년 '30년 경과 비밀해제 외교문서'를 공개한다. <더팩트>는 1979년 전두환의 12·12 사태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 퇴행에 깊은 우려를 드러냈던 미국의 입장을 외교 전문을 통해 재구성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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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매년 30년이 지난 기밀문서를 일반에게 공개합니다. 공개된 전문에는 치열하고 긴박한 외교의 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전문을 한 장씩 넘겨 읽다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펼쳐집니다.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면 영화가 되듯이 말이죠. <더팩트>는 외교부가 공개한 '그날의 이야기'를 매주 재구성해 봅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외교비사(外交秘史)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감춰져 있었을까요? <편집자 주>

[더팩트ㅣ김정수 기자] 1979년 전두환이 12·12 사태를 일으키자 카터 행정부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며 '민간 정부'만을 지지하겠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한미 동맹에 불리한 여론이 미국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한국의 헌정 질서가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한 미국대사는 외무부(외교부) 장관 면전에 "이번 일로 내가 피곤해졌다"며 정제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1979년 12월 13일 오후 5시 30분. 리처드 홀부르크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는 김용식 주미대사를 초치했다. 홀부르크 차관보는 "한국 정부가 긴급조치 9호를 철폐하는 등 정치 발전에 큰 진보가 있었는데 이번 사태는 우려된다"며 "한국 정부의 명확한 입장을 알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미국은 최규하 대통령에 의해 '민주주의의 무덤'으로 일컬어졌던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된 점에 고무돼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이 강행한 12·12 사태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 것이다. 앞서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부 부장관도 "12·12 사태가 최 대통령의 민주 발전 노력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한 바 있었다.

홀부르크 차관보는 "한국군 체제가 너무 급격히 변동돼 지휘 체계가 동요될 수 있다"며 "북한 김일성이 군사적인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대(對)한 방위 공약을 이행할 것이지만, 미국 내에서 한국에 불리한 여론이 크게 대두되는 것은 걱정"이라며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한국의 문제를 크게 취급하고 있고 국무성, 국방성, 백악관 측은 비상한 주의를 보이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미국의 우려를 서둘러 덮으려 했다. 우선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범행과 관련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새로운 혐의가 발견됐다고 강변했다. 이에 정 총장을 조사하려던 과정에서 그가 저항해 총격 사건이 발생, 다행히 사태는 잘 수습됐고 더 이상의 돌발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변명했다.

또 군부 내 체제 변동은 다소 불가피하겠지만, 최 대통령이 표명한 정치 발전 계획은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며 미국을 안심시키려 했다. 당시 최 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맡은 바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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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부르크 차관보에 이어 12월 19일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박동진 외무부 장관을 만났다.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는 박 장관 면전에 "본인도 피곤을 참고 (미국 경제인들의 만남에) 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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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부르크 차관보는 12월 18일 김 대사를 다시 만나 몇 가지를 당부했다. 그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이번 사태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카터 대통령은 한미 연합사령부가 정상 운영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미국의 대한 방위는 확고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한 한국과 주한 미군 간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핵심은 그다음이었다. 홀부르크 차관보는 "미국은 한국의 헌정 질서가 유지되면서 민주 발전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길 강력히 희망한다"며 "한국은 긴급조치를 해제해 광범위한 정치 참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바, 이러한 방향이 변동 없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 정세는 전두환의 철저한 계획에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12월 19일에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박동진 외무부 장관에게 정제되지 않은 표현을 써가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군은 미국과의 협조를 완전히 무시하고 대대·사단 병력을 자의로 이동시켜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과 행동의 자유를 지극히 훼손했다"며 "연합사의 작전 통제권 위반과 위계질서 문란은 놀라울 정도"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미국 군부는 극도의 불만을 표하고 있다"며 "이 불만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미 합참의장을 거쳐 백악관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나도 전두환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솔직히 만족하지 않는다"라며 불편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특히 글라이스틴 대사는 박 장관 면전에 "미국 경제인들이 이번 사태 후 나를 만나자고 해서 '피곤을 참고' 응했다"며 극도의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미국은 어디까지나 한국의 민간 정부와 상대할 것이고 민간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이 최 대통령의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12월 28일 글라이스틴 대사는 박 장관을 재차 만나 우려를 표했다. 그는 박 장관에게 "군부 지도자들이 최 대통령의 정치 계획을 앞으로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봐도 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박 장관은 "군부 지도자들이 최 대통령의 정치 발전을 지지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하지 않아도 좋다"며 어떻게든 그를 달래려 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0년 5월 17일 전두환은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한국 민주주의는 깊은 어둠 속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내란 수괴' 전두환의 12·12 사태가 45년째 되던 2024년 12월 12일은, '내란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자신의 비상계엄을 정당화한 날이다.

js8814@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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