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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당초 계엄 작전시간 22시… 尹, 국무회의 늦어지자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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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그날의 재구성

조선일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당시 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선관위 시스템 서버를 촬영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지난 12월 6일 공개했다./행정안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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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역인 노상원(62·육사 41기·예비역 육군 소장) 전 정보사령관이 “비상계엄이 계획대로 당일 오후 10시에 선포됐다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19일 알려졌다. 사전에 계획된 ‘계엄 선포 정각’이 오후 10시였으나,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 만류가 길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쫓기는 듯 급박하게’ 계엄을 선포했고, 현장 병력은 “작전이 취소되는 것 아니냐”며 동요했던 정황도 나타났다.

◇“국무회의 늦어져 대통령도 당황”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시각은 오후 10시 27분이었다. 국군정보사령부 병력은 경기 안양 주둔지에서 대기 중이었고, 노 전 사령관은 이 상황을 지휘 중이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후 10시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동시에 선관위에 진입, 서버를 확보하는 것이 작전 목표였다고 한다. 하지만 용산 대통령실 현장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등이 윤 대통령을 계속 만류했고, 국무위원 정족수를 채우고 개의한 시각도 10시 17분이었다.

노 전 사령관은 “작전 계획이 원래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며 “특히 선관위는 병력을 빨리 투입했어야 하는데 자꾸 늦어졌다”고 경찰에 진술했다고 한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계엄 선포가 늦어지자 노 전 사령관에게 전화해 “조금만 기다려라”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은 선관위에 투입된 두 정보사 대령에게 대기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두 대령은 노 전 사령관에게 “작전 취소되는 겁니까”라며 불안한 기색을 보였다. 문상호 사령관도 초조해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3일 저녁 삼청동 안가에서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에게 최초로 하달한 ‘계엄 작전 지휘서’에도 계엄 선포 시각은 ‘2200(오후 10시)’으로 명시돼 있었다. 박안수 계엄사령관이 발표한 포고령 1호의 최초 발령 시각 역시 오후 10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윤 대통령 계엄 선포가 늦어지면서 오후 11시로 수정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당일 국무회의 참석자들에게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 폐회 선언도 없이 나갔다” “대통령이 매우 초조하고 당황한 기색이었다” “참석자들이 ‘대통령 어디 가셨냐’고 당황해하는 사이 누군가 담화 생중계를 틀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당일 오후 구삼회 육군 제2기갑여단장도 판교 정보사 사무실로 호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 파주에 주둔하고 있는 2기갑여단은 서울에서 30km가량 떨어진 전차 부대로 K1A2 전차, K200 장갑차, K55 자주포 등으로 무장한 8개 대대를 거느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상조사단은 1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김용현 전 장관이 3일 오찬에서 ‘국회가 국방 예산으로 장난질인데, 탱크로 확 밀어버려’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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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1500명 투입, 실탄 1만발 반출

비상계엄 작전에 투입된 인원·장비 현황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실 등 자료를 보면, 특전사·수방사·방첩사·정보사 등에서 작전에 투입한 병력은 1500명이었다. 개인에게 실제 지급되지는 않았지만 챙겨 간 실탄은 1만발 이상으로 추정된다. 특전사·수방사가 투입한 군용 차량은 모두 107대였다.

병력 수송용 대형 버스(45인승) 26대와 중형 버스(25인승) 15대를 비롯해 군용 오토바이 25대, 방탄 차체를 한 소형 전술 차량 2대 등이다. 블랙호크 헬기(UH-60) 12대도 특전사 707특임단을 공수하는 데 동원됐다. 병력 규모별로는 특전사 대원이 1139명으로 가장 많았다. ‘참수 작전’을 수행하는 특전사 707특임단은 197명, 1공수여단 400명, 3공수 271명, 9공수 222명, 특수작전항공단 49명 순이다.

방첩사는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과천 청사 등에 200여 명을 투입했다. 국회에 투입된 방첩사 요원 49명은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 체포조로, 체포 후 서울 관악구 수방사에 B1 지하 벙커에 구금하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수방사에선 군사경찰단과 제1경비단 소속 병력 211명이 계엄군으로 투입됐다. 이 중 61명이 병사였다. 정보사는 북파 공작 작전 등을 수행하는 특수요원(HID)을 포함해 총 30여 명을 동원했다.

계엄군은 당시 방탄모와 방탄조끼, 야간 투시경 등 개인 장비를 갖추고, 저격용 총과 K1 기관단총, 권총 등 화기를 지참했다. 아울러 삼단봉과 테이저건, 무인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드론재밍건까지 휴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전사 707 특임단(197명)은 보통탄 3960발, 공포탄 1980발을 반출했다. 수방사(211명)는 실탄 5048발과 공포탄 2939발을 내놨다. 특전사 1·3·9공수여단과 방첩사는 아직 장비·실탄과 관련한 세부 사항을 밝히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진경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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