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사진 연합뉴스TV 캡처 |
군 1500여명이 동원된 12·3 비상계엄 사태의 막후 설계자는 ‘민간인 노상원씨’였다. 전직 국군정보사령관인 노씨(육사 41기·예비역 소장)는 정보사 요원들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입 등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 손으로는 이번 계엄의 ‘키 맨’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육사 38기·예비역 중장)의 귀를 붙잡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사 민원’ 등을 미끼로 현역 군 장성들을 쥐락펴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경찰 공조수사본부는 18일 노씨를 김 전 장관과 불법적인 계엄 시행으로 내란을 일으킨 혐의(내란실행)로 노씨를 구속했다. 경찰은 노씨가 계엄 당일 전후로 김 전 장관과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면서 계엄 포고령 1호 작성에 관여했으며, 선관위 부정선거 수사와 요인 체포·심문 작전에 정보사 요원들을 동원하는 등 계엄 실행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씨를 김 전 장관의 ‘비선 문고리’로 보는 것이다.
대표적인 ‘충암파’로 꼽히는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육사 48기)도 “계엄 직후 김 전 장관이 노씨에게 연락해보라고 지시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노씨가 계엄 국면에서 정보사에 국한하지 않고 계엄군 전반 운용에 관여했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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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시작된 김용현과의 인연
이런 구도가 가능했던 건 35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노씨와 김 전 장관 간 탄탄한 인연 때문으로 보인다.
전·현직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두 사람은 김 전 장관이 1989년 무렵 소령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일 당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노씨가 같은 55경비대대에서 대위로 근무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 전 장관은 2007~2008년 박흥렬 전 육군참모총장(육사 28기)의 육군본부 비서실장으로 재직했고, 김 전 장관의 추천으로 노씨도 비서실 산하 정책부서의 과장급으로 근무하게 됐다고 한다. 김 전 장관은 당시부터 노씨에 대해 “정보 보고서를 잘 쓰는 친구”로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노씨는 특히 국방부와 국회 등에서 정보와 풍문을 수집하는 역할을 잘 했다고 군 소식통들은 전했다.
노씨는 특히 김 전 장관의 육사 38기 동기생을 비롯한 ‘정보맨 예비역 그룹’을 잘 챙겼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전직 군 관계자는 “노씨는 윗사람을 모시는 재주가 비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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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령 때 정보 병과로 변경…사령관까지 승승장구
1981년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 노씨는 소위 임관 때 병과는 보병이었으나, 소령 때 정보 병과로 ‘전과’를 했다. 한 소식통은 “이때 ‘노용래’란 이름도 ‘노상원’으로 개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씨는 극히 폐쇄적인 정보병과에서도 국정원·청와대 파견 근무를 거치며 권력의 주변부에 항상 머물렀다고 한다. 대북 감청 부대인 ‘쓰리세븐’ 777사령부를 거쳐 정보사령관 자리까지 꿰찼다. 군 내부에선 전과를 할 경우 보직이나 진급 면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노씨는 특유의 수완으로 이를 극복했다는 평가다.
또 다른 전직 군 관계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노상원을 통하면 민간인이든 예비역이든 가리지 않고 다 만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 “권력을 좇는 감각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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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불명예 전역…입산설(說)도
승승장구했던 노씨는 성추행으로 일순간 추락했다. 2018년 1월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임명된 그는 같은 해 10월 1일 국군의 날 교육생 신분의 부하 직원을 술자리 등에서 수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현역 장성 신분으로 구속된 그는 1심 보통군사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2심에서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후 노씨의 행적을 놓고 육사 동기생들 사이에선 “산에 들어갔다”거나 “칩거 중” 등의 소식이 간간이 돌 뿐, 주변과 연락이 사실상 끊겼다고 한다.
불명예 전역 수순을 밟은 노씨에 대해 1심 재판부도 판결문에서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모두 상실했다”는 걸 감형 이유로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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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복귀’ 어떻게 가능했나
하지만 그는 예상을 깨고 비상 계엄 사태의 한복판에 등장했다. 그가 김 전 장관과 계속 연을 이어왔는지, 윤석열 대통령 당선 뒤 다시 접근한 것인지 등 명확한 경위는 파악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등에서 노씨가 활동했다는 공식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평소 “진중한 성격”으로 평가받던 문상호 현 정보사령관(육사 50기·소장)까지 계엄 실행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 배경에도 결국 노씨가 있다는 관측이다.
문 사령관은 상반기 정보사 블랙요원의 기밀유출과 하극상 사건 등으로 벼랑 끝에 몰린 상태였다. 그런 그가 노씨에게 구명을 청탁하고, 지난달 장성 인사에서 실제 유임되자 계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게 됐을 것이란 관측이 군 내에선 지배적이다.
노씨와 문 사령관은 박근혜 정부 때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 밑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고 한다. 노씨는 대전고, 문 사령관은 대전 보문고로 동향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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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노씨’ 지시 받고 움직인 별들
관련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현역 장성들이 사실상 노씨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김 전 장관이 직접 노씨에게 연락하라고 하거나, 노씨가 “김 전 장관의 뜻”이라며 말을 전하는 식이었다.
지난 1일 경기 안산의 ‘롯데리아 회동’ 멤버인 정보사의 정모 대령도 경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노씨가 당시 ‘너희는 선관위 전산실로 가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또 이 자리에서 노씨는 문 사령관에게 “인원을 선발했냐”고 물었고, 문 사령관은 “예”라고 답변했다고 덧붙였다. 노씨와 문 사령관이 사실상의 상하 관계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지난 3일 계엄 선포 뒤 선관위에 정보사 등 병력이 투입됐다.
육군 제2기갑여단의 구모 여단장(준장), 방모 국방부 전시작전권전환 태스크포스(TF)장(준장) 등도 사전에 지시를 받고 3일 경기도 판교의 정보사 사무실로 집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노씨는 진급 등을 언급하며 이들의 행동을 독려했다고 한다. 구씨는 전날(2일) 연가를 내고 계엄 당일 판교로 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철재·정영교·이유정·심석용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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