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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의사 출신 경제학자의 처방전 "차등 임금이 돌봄위기 해법"[이슈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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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연세대 '인구와 인재 연구원' 원장

서울특별시를 중심으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가 시범 도입됐지만, 최저임금을 적용한 월급 약 250만원을 감당할 수요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가정의 약 40%가 상대적으로 부유한 '강남 3구'에 몰려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국내 고령자 급증으로 20년 후에는 100만명의 노인 돌봄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홍콩처럼 기본급을 낮추되 능력에 따른 차등 임금을 도입하는 등 유연한 임금체계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0일 연세대 의과대학 연구실에서 만난 김현철 연세대 '인구와 인재 연구원' 원장(예방의학교실 교수)은 "현재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아동돌봄을 중심으로 도입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노인돌봄으로 전환될 것"이라며 "홍콩에서는 가사관리자 최저임금이 80만원인데 평균임금은 110만원으로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나라도 직종별로 다르게 최저임금을 적용해 조금 낮은 수준에서 시작하더라도 수요 자체를 늘리고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하는 가치만큼 적절한 대우를 받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교수 자리에서 나와 최근 한국으로 돌아온 김 교수는 의사이자 경제학자라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하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으로 유학,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미국 코넬대 정책학과 교수를 거쳐 홍콩과기대에서 일하다 올해 연세대로 이직했다.

그는 이달 연세대에 '인구와 인재 연구원'을 설립하고 원장으로 나서 저출산·고령화 해법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종관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부원장직을 맡겼다. 김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정부 차원의 '빅 푸시(big push, 대대적인 개혁)'가 필요할 때"라며 "행정 빅데이터를 연계·분석하고 실제 사회실험을 통해 확실한 근거(solid evidence)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이렇게 만들어진 객관적 증거를 바탕으로 정책입안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경제

10일 김현철 연세대 인구와인재연구원장이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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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온 계기가 뭔가.
▲남은 학자 인생 20년, 지금까지 쌓은 역량을 한국 사회에서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급은 3분의 1로 감소했지만(웃음), 그걸 감수할 만큼 학자로서의 소명의식을 추구하기로 했다. 나와 밀접하게 관련돼있으면서(relevant) 우리 시대가 가장 요구하는 문제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그게 인구와 인재 문제였다. '인구'는 사람의 양적인 측면에서 저출산·고령화와 이민 문제를, '인재'는 질적 측면인 보건·교육·노동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연세대로 올 때부터 이 연구원 설립을 계획하고 있었다.

-상경대학과 의과대학이 연합한 대학 간 연구원이라니, 독특하다.
▲경제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인센티브만 생각한다. 근데 인센티브도 한계가 있다. 저출산 문제가 인센티브 부족에서만 나오겠나. 어마어마한 다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다른 단과대학도 들어와야 할 거라고 본다.

-연구원의 첫 컨퍼런스 주제를 '이민'으로 결정했다고.
▲우리 연구원이 다루는 여러 문제 중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본다. 고령화 시대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최고 인재를 왜 해외에서 못 들여오는지 짚어보고, 돌봄인력 등 중간기술 인력은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등을 다룰 예정이다.

-어떤 국가에서 이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문화적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 동남아시아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들여와야 한다. 종교적으로 이질감이 덜한 불교권이나 기독교권 국가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피부색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미얀마, 베트남, 필리핀이 적합한 이유다. 특히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필리핀 출신 사람들은 교육과 관리가 수월하다.

이는 곧 우리나라에서 부족해질 돌봄인력 수급과도 연관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필리핀 간호대 졸업생들을 요양보호사로 받으면 좋겠다. 현지 월급이 25만원 수준이라 100만원만 줘도 많이 올 수 있다. 이들이 한국어를 배워서 우리나라 간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정식 간호사 자격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외국인 돌봄인력 도입이 시급한 이유는.
▲20년 후에는 돌봄인력이 100만명 정도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국인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금은 요양병원의 조선족 간병인 비중이 높다. 조선족이 재외 동포 체류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조선족이 줄면서 양질의 인력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임금이 올라도 돌봄의 질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도 이미 4만명의 외국인을 돌봄인력으로 들여왔다. 이들이 5년 이상 일하고 일본어로 요양보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영주권을 준다.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 요양시설에서 기본적인 한국어와 돌봄 기술을 배우게 하고, 한국어로 시험에 합격하면 요양보호사로 일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우리나라도 올해 서울시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 기준으로 월 250만원은 지급해야 하는데, 그러면 국내에서 충분한 수요 창출이 어렵다. 홍콩의 경우 최저임금이 80만원이지만 평균임금은 110만원이다. 잘하는 분들은 200만원도 받는다. 내가 홍콩에 있을 때 고용했던 분은 6개의 다른 집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생산성에 따른 차등지급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홍콩처럼 시장 원리를 도입하되, 정부는 관리·감독에 집중해야 한다.

-최저임금을 달리해야 한다는 건가.
▲직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게 맞다. 관련 논의가 뜨거운 건 나도 안다. 근데 지금 당장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제도가 과연 완벽할까.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과 이른바 3D업종의 최저임금이 같아야 하는지 생각해봐라. 서울과 지방이 같아야 하는지도 말이다. 미국도 주별로 최저임금이 다르지 않나. 최저임금의 기본 목적은 그 지역에서 일한 대가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거다. 다만 이게 외국인 차별이 돼서는 안 된다. 처음에는 낮은 수준에서 시작하더라도, 능력에 따라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다만 홍콩의 경우 거주할 곳까지 마련해주게 돼 있는데,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논의가 돼야 하는 부분이다.

-저출산의 원인에는 교육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은 뭐라고 보나.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캐치업 이코노미(따라잡기 경제)'까지는 좋았다. 수능 잘 보는 사람이 캐치업 경제에 잘 맞는 형태다. 하지만 혁신 경제에는 전혀 안 맞다. 이제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 입학 채널이 다양화돼야 한다. 수능을 없앨 수 없다면, 적어도 다양한 입학 경로가 있어야 한다. 조국 사태 이후 그런 채널들이 많이 막혔는데, 부작용이 있더라도 그런 길들이 열려있어야 혁신적인 인재가 나온다. 모든 학생을 혁신가로 만들 순 없지만, 최소한 상위 1% 정도는 틀을 깨고 혁신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시스템 전체를 혁신 중심으로 바꾸기 어렵다면, 잘하는 학생들만이라도 혁신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럼 최근 한은이 제시한 대학 지역비례선발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한은이 서울대에서 열었던 입시제도 개편을 위한 심포지엄 토론회에 나도 참가했다. 당시에 '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을 찾자는 취지로 지역비례선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는데, 실제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인재들은 저소득층에 있다고 본다. 저소득층을 직접 지원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문제다. 의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소득을 올리고 다른 직종과 3배 이상 임금 격차가 나다 보니, 웬만한 학생들은 모두 의대에 몰리지 않나. 임금 격차가 합리적인 수준이라면 '돈을 조금 적게 벌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선택이 가능할 텐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산업 창출이 실패한 것도 이런 이유와 연관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신규 산업을 만들지 못했다. 반도체가 마지막이었다. 바이오기술(BT), 양자컴퓨터, 정보기술(IT) 등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우리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연구원의 첫 번째 대외협력 파트너로 한국은행을 선택했다고.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경제정책과 밀접하게 연관돼있다. 특히 최근 구조개혁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한국은행과는 노동시장, 생산성, 금융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하다. 조만간 업무협약(MOU)을 체결할 예정이다. 내가 안식년 때 아시아개발은행(ADB)에 있었는데, 이창용 총재가 ADB에 있다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 가지 않았나. 이 총재가 당시 남긴 레거시가 아직도 이어진다고 하더라. 학자로서도, 정책전문가로서도 최고의 역량을 보여주신 분이다. 앞으로 증거기반 정책연구에서 한국은행과 긴밀히 협력할 계획이다.

-연구원 차원에서 도전과제는 뭔가.
▲중장기적인 재정 안정성 확보다. 우수한 인재를 모으려면 펀딩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박사후연구원은 연봉 1억원을 받는데, 우리나라는 3600만원에 불과하다. 우리는 각종 후원금을 모아 두 배 가까이로 올렸지만,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좋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좋은 논문이 나오고, 그래야 또다시 우수한 인재들이 모인다. 탁월한 정책 증거를 만들려면 뛰어난 인재를 모셔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뜻있는 분들의 기부도 필요하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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