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일인 12일 서울 중구 서울역 대합실 텔레비전 화면에 윤석열 대통령의 4번째 대국민 담화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일부 시민들이 자리를 뜨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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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가득한 격노 끝에, 쫓기듯 아니 홀린 듯 허겁지겁 터져 나온 생경한 두 글자의 뜻은 이랬다. '앞으로 대통령에 거역하는 정치인, 언론, 시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이를 거역한다면 국회를 짓밟은 무장 계엄군이 언제든 당신의 자유를 짓누를 수 있다.' 대한민국의 자유와 안전, 영혼, 민주주의에 사망선고를 내린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당당히도 내뱉었던 대통령은 대선에서 이긴 지 꼭 1,000일째 되던 그날 밤, 나라와 국민을 배신한 '내란 피의자'가 됐다.
그는 어쩌다 국민과 나라를 적으로 돌리는 파국의 버튼을 스스로 누르게 됐을까. 돌이켜보면 그의 취임사부터 적대로 가득했다. 의례적으로나마 띄웠던 통합과 협치는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대신 나라를 위기에 빠트린 주범으로 '반지성주의'를 콕 집어 공격했다. 뚜렷한 실체는 없었으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세력은 모두 적으로 규정하겠다는 선전포고의 시작이었다.
마지막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12·12 담화를 끝으로 자신이 그토록 비판하던 반지성주의의 화신이 돼 있었다. 본인이 주위에서 보고 듣고 스스로 말하고 싶었던 부정선거 의혹에 상당히 심취해 있는 듯했다. 대통령 자신만이 오직 진실이라는 오류에 빠진 세계에서 지난 총선 자신에게 압도적 패배를 안긴 다수 야당은 반드시 없애 처단해야 할 "범죄자",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보일 뿐이었다. 구태여 국민 앞에 고개 숙일 필요도, 야당에 손을 내밀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내란을 일으키기 앞서 그는 국민과 야당과 계속 싸우며 혼자만의 내전을 치르고 있었다.
용산도 그의 상태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참모와 원로의 고언이 잇따랐지만 99% 자기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며 상대방의 입을 닫게 했다고 한다. 압권은 이 한마디. "당신이 대통령인가. 대통령은 나다." 그에게 나라와 국민은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해 존재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인가.
반지성주의 통치자에 맞서, 국민들은 합리적 지성과 상식에 근거해 그를 정당하게 탄핵했다. 폭력과 억지가 아닌 법과 절차를 지켜 민의의 전당을 구해냈고 주말마다 도심 광장에서 가지각색의 응원봉으로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되살렸다. 우리 손으로 잘못 뽑았으니 우리 손으로 올바르게 끌어내리겠다며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
그러나 그를 후보로 내세워 대통령까지 만든 여당은 아직까지 사과 한마디 없이 비겁하게 숨어만 있다. "야당이 오죽하면 그랬겠냐" "폭동이 아니라 소란이다" 등 본질을 흐리는 궤변도 서슴지 않는다. "1년 뒤면 다 잊힌다"는 오판과 오만 속에 갇혀 그들만의 요새를 공고히 구축 중이다. 탄핵에 찬성하는 80% 국민이 아니라 20% 강성 지지층만 보고 3년 남은 다음 총선까지만 버티면 '나의 배지'는 지킬 수 있다는 심산이다.
그 역시 씩씩대며 버티기 중이다. "끝까지 싸우겠다", "포기하지 않겠다"던 그의 마지막 말은 일부 강성 보수 세력에 준동하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 수사도 거부하고 압수수색도 거부하는 그가 어느 순간 광화문 극렬 보수 집회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마이크를 잡고 나설지 않을까 걱정도 나온다. 이대로 나라가 더 무너지고 쪼개지기 전에 여당부터 각성해 서둘러, 단호하게 끊어 내길 바란다. 질척인다고 달라질 상황은 없다.
강윤주 국회팀장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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