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패션 기획 Merchandiser이자 칼럼니스트 '미키 나영훈'이 제안하는 패션에 대한 에티켓을 전달하는 칼럼입니다. 칼럼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여 근사한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만드는 데 좋을 팁을 편안하게 전해 드립니다.중국 베이징 시내의 한 쇼핑몰 내 영국 명품 패션브랜드 '버버리' 매장 앞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버버리는 강제 노동 등을 이유로 신장에서 생산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외국 기업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중국 기업 텐센트(騰迅·텅쉰)는 자사 모바일 게임인 '왕자영요'(王者榮耀)에서 버버리와 협업해 선보였던 의상(스킨)을 제거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지난 9월 국내 판매가격을 20%가량 하향 조정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판매 가격을 내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꾸준히 판매가를 올리면서 자신들의 위치를 굳히는 정책을 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매출이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버버리 주가는 지난 1년간 70% 이상 하락해 런던 증시 대표 지수인 'FTSE 100 기업'에서 퇴출당했습니다. 버버리만의 일이 아닙니다. 구찌는 영업이익이 2023년 상반기 18억 유로에서 올해 상반기 10억 유로로 44%나 역성장했고, 루이비통의 모기업 LVMH 그룹은 올해 2분기 매출 209억 유로에서 3분기 190억 유로로 급락하는 등 상당수가 고전 중입니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나친 가격 올려치기
2019년 이후 유럽의 명품 브랜드 평균 가격은 무려 52%나 상승했습니다. 특히 샤넬의 클래식 미디엄 플랩 백의 경우, 인상 폭은 100%(약 800만 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럭셔리 브랜드를 주로 소비하는 계층은 실제 상류층이 아닌, 상류층이 되고 싶은 중산층입니다. 이들은 럭셔리 브랜드 상품을 소비·보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럭셔리 브랜드는 가방, 구두, 의류 등을 상류층에는 ‘상품’으로, 중산층에는 ‘환상’으로 팔았던 것입니다. 이런 중산층의 과시욕 때문에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즉 가격이 상승하는데도 수요는 계속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욕심이 과했던 모양입니다. 너무 잦은, 그리고 지나친 가격 인상 폭 때문에 주 소비층이던 중산층이 아예 접근하기 어려워졌습니다. ‘1년 동안 돈을 모으면 구매할 수 있는 것’과 ‘접근할 수 없는 것’은 상황이 다릅니다. 특히 클래식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디자인이 아닌, 트렌디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브랜드일수록 그 하락세는 더 컸습니다.
로고를 가리고 품위를 갖추다
그런데 이런 침체 속에서도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지키는 럭셔리 브랜드가 있습니다. 예전 칼럼에서 ‘올드 머니 룩’을 다룬 적이 있습니다. 로고를 대놓고 드러내기보단 최고급 소재와 정교하고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통해 진정한 럭셔리와 부를 표현하는 스타일입니다. 최근에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 ‘드뮤어’(Demure)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브루넬로 쿠치넬리, 막스 마라, 로로피아나, 더 로우 등의 브랜드가 대표적입니다.
럭셔리 브랜드 '더 로우'의 2019년 겨울 컬렉션. businessoffashion 캡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콰이어트 럭셔리의 인기는 “(품질, 디자인 등) 제대로 된 제품을 구매해서 10년 입자”는 소비자 심리에서 시작됐습니다. 품질은 물론 좋거니와 디자인 역시 트렌드에 덜 민감하고 무난합니다.
문제는 이런 브랜드 역시 가격대가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높은 수준의 소재를 사용한다거나, 봉제를 이탈리아 장인이 맡는 등 원가 자체가 워낙 높아 판매가 역시 상당히 높습니다. 일상복에 가까운 상품을 초고가로 구매해야 하는 경우 중산층 소비자들은 쉽게 다가가기 어렵습니다.
제품 크기와 가격을 동시에 '다운'
최근 명품 브랜드들이 1,000달러짜리 미니 핸드백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 가격을 무작정 낮추는 게 아니라, 크기를 달리한 미니 핸드백을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제안한 것입니다. 실제로 ‘자크뮈스’의 경우, 브랜드 특유의 경쾌한 컬러와 키치한 매력이 돋보이는 마이크로 핸드백을 출시, 높은 가격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소비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자크뮈스의 마이크로 핸드백. prestigeonline 캡처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출시하기보단 기존 제품을 작게 디자인한다는 점입니다. 디자인의 신선함보다는 크기의 새로움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미니 핸드백은 ‘스몰 럭셔리’를 즐기는 재미를 제공하며 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2024년 미국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는 ‘양극화’라고 합니다. 그만큼 중산층은 점점 없어지고 소비를 포함한 모든 것이 양극화되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그렇다면, 그간 중산층을 상대로 환상을 판매했던 럭셔리 대기업들은 향후 어떤 길을 선택할까요?
나영훈 남성복 상품기획 MD & 칼럼니스트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