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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 (수)

이슈 연금과 보험

"결국 다 빼야 하는데"… 韓 투자 비중 늘리란 정치권 압박에 난감한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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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에 이은 대통령 탄핵 사태가 국내 증시의 변동성을 키우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큰손 국민연금공단이 국내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또 나온다. 기금 적립금이 1146조원(2024년 9월 말 기준)에 달하는 국민연금이 위기 상황에 소방수로 등판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형 연기금의 뒷받침이 시장에 나쁠 건 없다 보니 투자자 지지를 얻기에도 좋은 주장이다.

기금 운용 방향성을 해외 투자 강화로 잡은 국민연금으로선 정치권의 ‘애국’ 요구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외풍에 쉽게 휘둘리는 취약한 지배구조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역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도로 처분해야 하는 현실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저출생·고령화의 영향으로 국민연금은 머지않아 연금 지급을 위한 자산 매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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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DB



◇ 증시 흔들리자 여야 의원들 “국민연금이 도와줘야”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7월 11일 2896.43까지 오르며 3000포인트를 향해 순항하는 듯했던 코스피 지수는 이달 17일 종가 기준 2456.81로 주저앉았다. 지난 9일에는 장 중 2360.18까지 추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전쟁 예고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도, 이후 이어진 대통령 탄핵 추진 등의 대내외 악재가 증시 발목을 붙잡았다. 원·달러 환율은 1450원 가까이 치솟았다.

시장 분위기가 나빠지자 정치권에서는 국민연금이 한국 주식 비중을 늘려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달 1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임광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셜미디어(SNS)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고 환율 방어를 위한 긴급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국민연금이 해외 부분의 수익 일부를 실현해 국내에 투자한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적었다.

앞서 10일에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도 “한국 증시가 심각한 불안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매입 확대를 통해 시장 안정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윤 의원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보유한 자금을 활용해 저평가된 국내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법 개정이나 시행령 변경이 필요하지 않은, 신속히 실행 가능한 조치”라고도 했다.

증시가 불안정할 때 정치권에서 국민연금 등판을 요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국회의장을 지낸 김진표 전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18년 10월 3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며 “너무 근시안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증시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비즈

전북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경. /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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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풍에 취약한 큰손

집권 여당과 거대 야당 정치인의 잇따른 국내 투자 확대 요구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구성원들은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정치권이 여론을 살피면서 압박 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다. 복지부 장관이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는다. 겉으로는 독립성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이기 힘든 지배구조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서 10년가량 근무하다가 민간 증권사로 옮긴 전직 고위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찬성 사례만 보더라도 (국민연금에) 직·간접적 외풍이 어느 정도인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민연금에서 일한 10년 동안 정부 고위 간부와 국회의원 전화를 셀 수 없을 만큼 받았다”고 했다.

만약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늘리더라도 금세 다시 줄여야 한다.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애국 투자 요구를 난감해하는 또 다른 이유다. 국민연금 기금은 1146조원에 달하지만, 이 돈은 불과 30년 후 고갈된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연금 수령자가 훨씬 많아지는 인구 구조 변화 탓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 기업 핵심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조만간 연금 지급을 위한 자산 매각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큰손의 갑작스러운 자산 처분은 시장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국민연금이 매년 꾸준히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배경이다. 국민연금 중기자산배분안에 따르면, 2017년 20% 수준이던 국내 주식 비중 목표치는 2029년 말 13%까지 축소된다. 손협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운용전략실장은 “국내 주식 비중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경우 연금 지급이 수입보다 많아지는 성숙기에 연간 수십조원을 매도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 정책의 방향성을 ‘해외·대체 투자 강화를 통한 수익률 극대화’에 두고 있다. 전체 투자에서 해외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1.6%에서 2028년 60%로 커진다. 올해 들어 9월까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수익률은 0.46%, 해외 주식 수익률은 21.35%다. 국회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을 1%포인트(P)만 높여도 기금 고갈 시기를 6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준범 기자(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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