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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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국면에서 여당의 ‘탄핵 저지선’에 균열을 낸 여러 요인 중 하나는 정치 1년차 초선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그는 첫 탄핵안 표결이 이뤄진 7일 안철수·김예지 의원에 이어 여당 의원 중 세 번째로 ‘보이콧’ 당론을 어기고 표결에 참가했다. 평소 색채가 뚜렷했던 두 의원과 달리 조용했던 그의 반란은 이변에 가까웠다.
그는 14일 두 번째 표결을 앞두고 이틀 동안 국회 본청에서 같은 당 의원을 상대로 ‘탄핵 찬성’ 촉구 일인시위를 벌였다. 국민의힘이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하던 가운데 12명 이상이 무기명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고, 네 표 차이로 가결됐다. 김 의원은 “또 부결돼 윤 대통령에게 1주일이 더 주어지면 전쟁이라도 일으킬 거라 생각했다”며 “못 막으면 안 된다는 간절함이 강했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1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탄핵 가결 이후 당의 모습에 대해 “집토끼를 지키고 안정지향적으로 간다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생존법을 답습하고 있다”며 “그나마 전국 정당이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영남당에 극우 성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이 태극기 부대 같은 ‘아스팔트 우파’에 휘둘리면 외부 공격도 더 험해지고, 그나마 남은 합리적 보수가 다 떨어져 나가게 된다”며 “이러면 당의 미래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당론과 달리 ‘탄핵 찬성’ 목소리를 냈다.
A : “보수의 핵심 가치는 공정성·합리성·포용성·개방성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반대 세력 척결’을 앞세워 비상계엄을 했다. 헌정 질서를 깨고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했다. 당리당략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찬성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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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탄핵 가결 이후에도 당은 경직된 분위기다.
A : “2016년 탄핵 이후 ‘극렬 지지층을 기반으로 버티면 다시 기회가 온다’는 게 공식이 됐다. 12일 윤 대통령의 담화는 이런 흐름에 힘을 실었다. 눈치를 보던 기회주의 성향 의원들이 이를 계기로 극우 성향 의원들에게 다시 붙어버렸다.”
Q : 윤 대통령이 강경 발언을 쏟아냈는데도 ‘친윤’ 원내대표가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A : “바로 그 담화 때문이다. 대통령 메시지는 ’극우여 봉기하라’ ‘끝까지 싸우자’였다. 담화가 나오자마자 눈치 보던 세력이 확 쏠렸다.”
Q : 그런 상황에서 왜 일인시위를 벌였나.
A : “권성동 원내대표가 선출되고, 탄핵에 찬성하겠다는 의원들을 강하게 설득했다. (탄핵안이) 부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하는 단계는 끝났다고 판단했다. 당 안에 나 같은 미친놈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내가 ‘욕받이’가 되면 다른 분들이 찬성표를 찍을 여지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가결돼도 욕은 내가 먹지 않겠나.”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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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탄핵안 통과 뒤 어떤 느낌이었나.
A : “처음엔 안도감이 밀려왔고, 그다음엔 허탈했다. 민주당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며 나가는데, 보수주의자인 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탄핵 가결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당원협의회 사무실엔 항의 현수막이 붙었고, 지역 조직은 붕괴했다. 살해 협박까지 이어지면서 김 의원은 지난 주말 울산에서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다녀야 했다.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울산에서 변호사 생활을 했던 김 의원은 “사회적 기반이 다 무너진 것 같다”고 말했다.
Q : ‘배신자’라는 낙인이 두렵지 않나.
A : “칭찬은 금방 사라지고 ‘배신자 프레임’은 평생 갈 거다. 다음 공천은 100% 못 받을 거다.”
Q : 그런데 왜 나섰나.
A : “정치를 바꾸고 싶었다. 지금은 양당이 뒤를 캐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에만 열중한다. 보수·진보가 가치를 추구하고 정책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은 악마화하고 보복만 한다. 게다가 지금은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Q : 무엇인가.
A : “사실상 민주당이 거대 집권 여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민주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모두 장악할 수도 있다. 저 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건가. 계엄사태 같은 역사가 민주당 정권에서 반복될까 봐 겁이 난다. 그래서 반드시 이번 기회에 진영 정치를 깨야 한다.”
Q :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A : “솔직히 막막하다. 그래도 해야 한다. 미력하고 별것 아닌 사람이지만, 목소리를 내다보면 누군가 저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 또 목소리를 내지 않겠나. 그런 분들이 정치를 바꾸도록 국민께서 힘을 실어주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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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12·3 비상계엄 당일 스스로 각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계엄 선포 소식을 듣자마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떠올리며 국회로 향했다. 여당 의원 가운데 국회 본회의장에 처음 도착한 그는 국회 본청 구석구석을 다니며 동료 의원들을 본회의장으로 안내했다. 그 와중에 한 민주당 다선 의원이 “국민의힘 각성하라”고 외치는 걸 듣고는 달려가 “여기 온 여당 의원들은 당신보다 몇십 배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함부로 하지 말라”고 소리쳤다.
Q : 원래 강단 있는 성격인가.
A : “나서는 거 싫어한다. 학교에서 반장도 안 해봤다. 생애 첫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였다. 그런데 비상계엄 당일 ‘내가 목숨 걸고 막아야 국민이 피 흘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마음먹은 뒤로, 국회의원으로서 뭘 해야 하는지 자각하게 된 것 같다.”
Q : 국민의힘은 무엇부터 해야 하나.
A : “진심 어린 사과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내란을 저지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돼 버렸다. 당의 존립을 얘기하기 전에 진지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다음엔 보수가 무엇인지 가치를 다시 정립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며 쇄신해야 한다.”
오현석·김민정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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