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상 정치부 차장 |
“윤석열 대통령에게 항변할 기회를 하루라도 더 줘야 합니다.”
국민의힘 경남 지역 한 초선 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주변에 밝힌 넋두리가 아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열린 당 의원총회 비공개 토론 때 “국민의힘 1호 당원이 계엄 선포를 했는데 ‘미친 놈이다. 빨리 탄핵하자’고 판단할 사람이 있느냐”며 “인간이라면 그렇게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했다. 그의 발언은 “눈물이 한반도를 적실 것”이란 호소로 끝났다. 불과 이틀 전 윤 대통령이 “계엄은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는 궤변을 내뱉었는데, 국민의힘이 나서서 윤 대통령의 입이 되자는 소리다. 국회로 총을 든 계엄군을 보낸 대통령 앞에서 인지상정을 찾아야 하느냐고 반박한 의원은 없었다.
그날 의총은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을 위한 ‘명분 쌓기 대회’였다. 단상에 오른 영남 중진 의원은 “지금 밖에서 우리에게 찬성 압력을 넣는 사람들은 역사 이래 한 번도 우리를 찍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우리 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의총 전날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 탄핵 찬성 응답이 74%, 반대 응답이 23%였다. 그는 “20∼30%는 우리 당을 지지했고, 앞으로 그분들을 바탕 삼아 일어나야 한다. 20∼30%를 뿌리로 50%로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그 무엇보다 탄핵에 반대하는 일부 보수 지지층 정서를 우선한다. 소장파를 자처했던 우재준 의원(대구 북갑)은 탄핵 표결 직전 “한 사람의 법조인으로서 법리적 판단으로는 비상계엄 사건이 탄핵 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지역 여론을 수렴해 탄핵안에도 반대표를 행사하려 한다”고 썼다. 탄핵에 반대한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국민의힘은 반대에 85표를 던졌다. 최소 12명의 여당 의원이 탄핵에 찬성했는데, 여당에선 이들을 ‘부역자’로 몰아 제거하자는 색출 시도가 이어졌다. 니들은 나가라. 탄핵 반대 85명만으로 당을 꾸리겠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당명은 오래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은 2020년 9월 ‘모든 국민과 함께하는 정당’이라며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꿨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힘, 국민을 위해 행사하는 힘,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라는 3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바꾼 뒤 6번째 비대위가 들어섰다. 당 간판은 그대로인데 당 대표만 쫓겨나는 당 대표 잔혹사도 되풀이되고 있다. 국민의힘이 더는 국민을 위하거나 하나로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다. 74% 탄핵 찬성 여론에 역행한 것이 그 명백한 증거다.
간판에서 국민을 뗄지, 그대로 둬야 할지 심각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궤변은 보수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켰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하며 “부정선거 음모론자, 극단적 유튜버들에게 동조한다면 보수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음모의힘’ ‘극단의힘’으로 불릴 작정이라면 해산하는 것이 국민에게 이롭다.
박훈상 정치부 차장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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