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 서울 북촌. 이호준 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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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이 무채색의 이미지는 언뜻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컬러사진과는 다른 이끌림이 있다. 색의 부재는 피사체의 부족한 틈을 메우고 은근하게 가림으로써 핵심에 바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39p)
사진가 이호준이 흑백사진들을 엮은 포토에세이 <직조>를 출간했다. 이 작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뚜벅이’다. 그의 사진은 유별난 걸음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악천후가 아닌 다음에야 매일 새벽 6km를 걸어서 출근한다. 휴일에도 작가는 자택이 있는 부암동을 출발해 삼청동, 서촌, 북촌, 종로 등을 누빈다. 카메라를 지닌 채다.
이 작가에겐 반복해 걷는 길이 매번 같지가 않다. 매일 그 길 위에서 계절의 빛과 피사체의 시간을 예민하게 감각하기 때문이다. “걷기는 자기표현 행위를 자극하고 고무시킨다. 부지런한 걸음걸이가 좋은 사진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의 사진 철학이 담긴 문장이다.
이호준 작가는 10여 년 전인 40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공무원 생활 중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겨 걷기 시작했다. 어느 새벽, 강과 도시를 물들이는 빛과 색이 ‘벼락처럼’ 다가왔다. 그 찰나에 매료돼 카메라를 들었고, 사진은 작가의 삶 깊숙이 들어왔다. 지친 직장인을 치유하는 ‘처방전’이기도 했다.
이 작가의 피사체는 근사하지 않다. 철공소에 걸려 있는 공구들, 때 묻은 목장갑, 기와 얹힌 지붕, 낡은 아파트 외벽, 좁은 골목 등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그의 시선에는 붙들린다. 대상이 그의 앵글 안에 들어오면 ‘별거 아닌 것’이 ‘어떤 것’이 되고 만다. 일면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작가가 피사체를 대하는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가만가만한 위로를 받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궁편책 편집자는 에세이를 내며 “두 손에서 열리는 상설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벽에 한 장 한 장 정성껏 사진을 걸듯 편집했다는 말이다. 책은 선을 주제로 점선, 평행선, 겹선, 직각선, 동선, 포물선 등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책의 부제처럼 ‘명암으로 직조한 사진, 사진으로 직조한 일상’이 오롯이 담겼다.
2022.6. 안동 옹천. 이호준 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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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시실’에서는 골목골목 걸려 있는 우편함 사진들을 만난다. 현직 우체국장인 이 작가에게는 외면할 수 없는 피사체다. 긴 시간 정성 들여 눌러 쓴 손편지처럼 이 책은 은퇴를 앞둔 그가 우체국장으로서 독자에게 전하는 마지막 우편물이다. (궁편책|208쪽|3만5000원)
사진가 이호준의 포토에세이 <직조> 표지. 궁편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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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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