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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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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예 대통령에 익숙한 한국, 그럼에도 尹의 몰락은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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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WSJ, 탄핵 사태 배경 분석
"뿌리 깊은 정치적 양극화" 주목
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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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배경에 대한 외신들의 분석이 계속 잇따르고 있다. 특히 사실상 '자멸'을 부른 윤 대통령 개인의 내재적 요인은 물론, '냉전 시대의 잔재인 정치 양극화'와 '민주화 이전의 오랜 군부 독재'라는 한국 사회의 역사적 경험이 이번 불법계엄·내란 및 탄핵 사태의 전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데 주목하는 모습이다.

"정치 신인, 몰락도 급부상만큼 빨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5일(현지시간) 한국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퇴임 전후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을 거론하며 "불명예 대통령에 익숙한 한국의 기준에서도 윤 대통령의 추락은 독특하다"고 표현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대통령이 부패, 뇌물, 횡령, 권력남용 등 스캔들에 연루돼 버린 '한국 대통령 잔혹사'를 고려하더라도 윤 대통령 사례는 매우 특이하다는 얘기다.

WP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비타협적 최고 검사"(검찰총장)로서 전직 대통령 2명을 감옥에 보냈고, 대기업 총수들을 수사한 주인공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정치 신인'으로 첫 대권 도전에서 성공했지만, 대통령 임기(5년) 절반가량인 2년 7개월 만에 파면 위기를 맞았다. 신문은 이를 두고 "한국의 현대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단명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윤 대통령의 몰락은 그의 급부상만큼이나 빨랐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계엄'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혀 몰랐다는 점을 윤 대통령의 패착으로 꼽았다. WP는 "1960, 70년대 정치적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독재자들의 도구로 계엄령이 사용됐던 고통의 역사가 있는 한국에선 계엄령 선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짚었다. 이어 "(좌우) 분열이 심각한 국가를 통치하는 과제에 직면한 윤 대통령은 보수적 지지층에만 호소했고, 이는 (정치적) 양극화를 더 심화시켰다"며 "그는 점점 더 고립돼 대중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다음 날인 15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에서 촛불행동 회원들이 헌법재판소의 조속한 탄핵 심판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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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역사에 뿌리 둔 한국 정치"


'냉전의 언어'를 사용한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결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윤 대통령이 '반국가 세력' '공산 세력' 등 표현을 쓴 데 대해 "냉전 시대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처단' 같은 단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적을 규탄할 때 사용하는 수사와 비슷하다고도 했다.

WSJ는 "이 같은 언어들은 한국 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깊은 갈등, 좌우파 간 격렬한 싸움을 부추겼다"고 지적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 센터는 "미국보다 더 강한 정당 간 갈등을 겪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도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한국의 (정치적) 양극화가 가속화했다"며 "여당과 야당은 서로 협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냉전의 역사에 뿌리를 둔 한국의 무자비한 정치"를 재확인시켜 줬다는 게 신문의 진단이다. 1987년 민주화 이전 대립 구도(군부독재 대 민주진영)를 비상계엄 선포로 되살려낸 게 윤 대통령의 "재앙적 결정"이었다는 뜻이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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