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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월)

“하소연 할 곳도 없다”…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에 잊혀진 폭설 피해 농가[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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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1일 경기 용인시 남사읍에서 박승동씨가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가리키고 있다. 김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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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이 이러니까 어디에다가 하소연할 곳도 없어요. 다 애지중지 키운 것들인데…”

경기 용인시 남사읍에서 호접란을 키우고 있는 박승동씨(57)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지난 11일 비닐하우스를 보며 말끝을 흐렸다. 박씨의 비닐하우스는 지난달 말 경기도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다.

무너진 2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호접란이 그늘 아래 방치돼 있었다. 박씨는 “이미 일주일 넘게 햇빛을 보지 못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라며 “이제는 상품가치가 없어 못 쓸 것 같다”고 말했다.

호접란은 출하까지 오랜 시간을 공들여 키워야 하는 품종이다. 25도의 온도에서 키우다가 크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온도를 18도로 내려야 꽃을 피운다. 이렇게 2년 동안 잘 가꿔야 상품성 있는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러나 꽃이 막 피우려던 찰나 기록적인 폭설을 겪으면서 비닐하우스가 무너졌다. 그는 급한 마음에 난방을 틀어 쌓인 눈을 녹여보려 했지만, 녹는 속도보다 내리는 양이 더 많아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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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경기 용인시 남사읍에서 박승동씨가 운영하는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햇빛이 제대로 들지 않고 있다. 김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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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규모가 있는 화훼농가를 운영하는 박씨는 호접란 20만주를 키우고 있었다. 그는 “꽃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곤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도 못 하기 때문에 다른 작물에 비해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피해가 더 크다”라며 “이번 폭설로 10억원이 넘는 피해를 볼 것 같다. 속이 끊어지는 심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지난달 27~28일 폭설로 큰 피해를 입은 경기지역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폭설이 지나간지 2주가 지났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이 마비되면서 특별재난지역선포 등 지원을 위한 조치가 사실상 멈춰섰기 때문이다.

이번 폭설로 인한 피해는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분석이다. 지난 13일 기준 폭설로 인한 경기도 전체 피해액은 4953억원(전체 피해 4만1417건)에 이른다. 피해는 주로 비닐하우스 등 농업시설(14146건)과 축산시설(2299건)에 집중됐다.

경기도는 지난 6일 안성·평택·이천·화성·용인·여주·광주·안산·시흥·오산(초평동) 등 9개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행정안전부에 요청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국·도비 보조금을 피해액의 50~80%까지 받을 수 있고, 피해지역 주민들은 건강보험료 경감, 전기·통신료 감면 등 12개의 간접 지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재 관련 절차는 사실상 중단됐다. 특별재난지역은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치거나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하면 대통령 재가를 거쳐 선포된다.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으로 정상적인 진행이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 지역에선 ‘특별재난지역 선포만이라도 해달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중앙정부 지원이 언제 이뤄질지 기다리지 않고 시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면서도 “특별재난지역 선포 요청을 정부에 지속해서 요청하고 국회와 여야 정치권에도 관심과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천시의회도 성명을 내고 “정부는 이천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며 ”피해 복구 지원, 피해 주민 생활 안정을 위한 현실적인 피해 보상책 마련, 재난 대응 체계 구축 등 지속 가능한 자연재해 대비 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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