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카이스트 학위수여식 도중 한 석사 졸업생이 “알앤디 예산 복원하십시오”라고 소리치는 순간 경호원이 입을 막으며 제지하고 있다. 대전충남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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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 카이스트(KAIST) 디지털인문사회과학부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 카이스트 신문 기고를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전 교수가 거론한 폭력은 두 가지일 것이다. 먼저 윤 대통령이 참석한 지난 2월 카이스트 학위수여식에서 벌어진 ‘입틀막’ 사건이다. 둘째는 윤 대통령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한 발언이다.
윤 대통령이 ‘과학기술 분야 카르텔’을 언급하며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한 것에 항의하는 졸업생의 입을 대통령 경호처 직원 손으로 막아버린 모습은 과학기술 연구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이후 카이스트 학내에서는 대통령의 권위에 눌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고,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불만을 폭발시킨 기폭제가 됐다. 불만은 대자보로 등장했고, 학생들은 연구실과 도서관 대신 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시위장으로 가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탔다.
카이스트 학생들은 국가 장학금으로 공부를 한다. 국내 어느 대학 학생보다도 국가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강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카이스트만이 아니다. UNIST, DGIST, GIST 등 각 과기원 학생들도 매한가지다. 그래서 그들은 학위 수여식에서 발생한 폭력에 저항하는 것을 망설였을 수 있다. 그런 행동이 오히려 화를 불러온다는 것이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다시 확인됐다는 것을 안 순간 젊은 과학도들은 분노했다.
과학도만이 아니었다. 430명이나 되는 전·현직 카이스트 교수들이 비상 시국선언에 서명했다. 입틀막 사건 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뿔뿔이 흩어져 술자리로 향하던 교수들은 10개월 후에는 똘똘 뭉쳐 변화를 외쳤다.
전 교수는 "학위 수여식에서 시위를 한 졸업생이 대통령 경호실에 의해 제압되고 끌려 나갔을 때, 우리는 이에 분노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분노하지 않아야 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졸업생을 비판하고 경호처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다고 했다. 전 교수는 "이런 움직임은 과학자로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온 우리의 집단적 규범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전 교수의 표현대로 ‘작은 폭력’의 조짐이 합리화되고 잊혀질 때, 폭력의 씨앗이 자라났다. 당시 졸업생을 제압하던 경호처장은 국방부 장관이 되어 계엄령의 수족이 됐고, 수수방관하던 대통령은 국가적 혼란을 초래한 내란 수괴로 흑화했다.
전 교수는 "이제 우리 모두를 그때처럼 끌어낼 수는 없다"고 했다. 전 교수의 주장대로 시민들은 계엄 선언 후 국회로 향해 폭력을 막아냈다. 국회에 진입한 군인들도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윤 대통령의 ‘모두 끌어내’라는 지시는 이뤄지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침묵과 방관이 만들어 내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과학은 미래로 가는 길이지만 현재의 혼란은 미래로 향할 길을 흔든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삭감은 모두 과학계의 혼란을 야기했다. 대통령의 어젠다가 더 이상 과학기술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미국 실리콘 밸리 핵심 인사들은 민주당 정권 지지에서 벗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에게 줄을 대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에 권력에 대한 투항일 수도 있지만 기존 정치가 과학기술에 개입한 것을 혐오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인들이 과학을 흔들어 대는 길에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변화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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