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수직으로 올린 기네스 기록도 있어… 통념 믿을 땐 신중해야
잃은 돈의 두 배씩 판돈 키워야 단숨에 만회? 파산의 지름길일 뿐
혼돈의 시대일수록 이성·과학… 그래야 미신·도박을 피할 수 있다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 '달걀을 꺠드린 콜롬버스'(1752) /그래픽=백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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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일본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는 달걀을 바닥에 세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여기서는 달걀을 깨지 않고도 세운다. ‘콜럼버스의 달걀’로 잘 알려진 상식이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달걀은 그냥 세울 수 있다. 심지어 기네스 기록 중에는 달걀 위에 달걀을 몇 개나 더 쌓을 수 있는가 같은 종목이 있고, 2020년 말레이시아 청년이 3개를 수직으로 세워 이 분야 신기록을 보유 중이다.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 여전히 논란이지만, 만약 콜럼버스가 정말로 달걀을 깼다면, 콜럼버스 역시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지레 포기해 버린 셈이다. 이처럼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그럴듯한 이야기라도 쉽게 휘말려서는 안 된다. 2021년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주먹에 쥔 구슬의 홀짝을 맞히는 게임이 나온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런 홀짝 게임에서 이길 확률은 반반이다. 그런데 이주 노동자 알리가 계속 이기자, 확률이 반반인데 어떻게 연속해서 딸 수 있냐고 서울대 출신 조상우는 화를 낸다. 경영학과를 졸업한 금융 전문가의 항의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확률이 반반인데 한쪽이 계속 이기면 공정하지 않고 속임수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앞선 게임에서 연속적으로 따거나 말거나, 그다음 홀짝 게임의 확률은 언제나 1/2이다. 전문 용어로는 ‘독립사건’이라고 한다.
중고등학교 수준의 간단한 수학이지만 이런 오해를 벗어나긴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쪽이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승리할 수는 없다는 확신은 상대방이 이길수록 내가 이길 확률이 점점 커진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탄생한 도박 기법이 있다. 연속해서 잃을수록 승리의 순간이 다가온다는 신념하에 잃은 돈의 두 배씩 판돈을 거는 것이다. 딱 한 번이라도 이기기만 하면 단숨에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인데, 이를 ‘마틴게일(martingale) 베팅’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서는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져 있다.
인간은 이처럼 희박한 확률을 가능하다고 믿는다. 반대로 꽤 확률이 높은데도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의심하기도 한다. 11명의 선수가 뛰는 축구 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경기가 진행되면 양 팀 선수 22명과 심판 1명, 이렇게 총 23명이 그라운드에서 뛰게 된다. 그럼, 이 23명 중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얼핏 매우 드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이 확률은 무려 50.7%다. 365일이나 되는 많은 경우의 수를 23명과 비교하다 보니 생일이 겹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확률은 반 이상이다. 이를 ‘생일 문제(birthday problem)’ 또는 ‘생일 역설(birthday paradox)’이라고 부른다.
그래픽=백형선 |
이 확률을 구하기 위해서 우선 생일이 같지 않을 확률부터 구해야 한다. 운동장에 뛰는 선수가 2명인 경우를 생각하면, 두 사람의 생일이 같지 않을 확률은 364/365. 이를 세 명으로 확장하면 364/365 × 363/365가 된다. 이렇게 계속 확장하면 23명의 생일이 모두 다를 확률은, 364/365 × 363/365 × 362/365 × 361/365× … × 343/365이므로 이 값은 대략 0.493, 즉 49.3%이다. 따라서 23명 중 하나라도 생일이 같은 확률은 1-0.493=0.507, 즉 50.7%가 된다. 이처럼 인간은 일어나지도 않을 확률에 기대를 걸고, 꽤 자주 발생하는 사건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온갖 해석을 갖다 붙인다. 음모론은 이렇게 탄생한다.
아마 이런 인간의 모순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이 경제학자 케인스의 ‘미인 대회 이론’일 것이다. 그는 미인 대회에서 우승자를 고르는 것을 주식 투자에 비유하면서, 내가 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뽑지 말고, 남들이 미인이라고 뽑을 후보를 선택하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흔히 알려진 내용. 그러나 케인스의 생각은 이 정도로 단순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부터 한 걸음 더 나간다. 당연히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남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을 반영한다면, 또다시 한번 더 나아가 이를 반영하는 사람들까지 포함해 고려한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요컨대, 사람들의 미래 행동을 추정하고 예측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인간의 사고는 반드시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지 않다. 오히려 동물적이고 본능적이다. 하지만 인간은 오랜 기간 이런 자신의 모순을 잘 알고 스스로 제어해 왔다. 그렇게 만들어 낸 도구가 수학이었고 과학이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성찰하며 닥친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어갔다. 지구가 편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생각했던 것은, 경험과 본능에 의존하지 않고 의심했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명은 그 토대 위에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게 야만과 구분되었다.
얼마 전에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혼돈의 시대로 들어섰다. 중요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이럴수록 과학적 사고가 더욱 절실하다. 상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깨지 않아도 될 달걀을 깨는 일이 없을 것이고, 그럴듯한 주장을 날카로운 이성으로 비판해야 우리 사회를 미신과 도박에서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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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 에스앤에이치연구소장·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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