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보부는 1943년 '민스미트(Mincemeat)'라고 명명한 작전을 추진했다. 요약하면 독일군을 기만하는 작전이었다. 전쟁사에서 가장 완벽한 첩보작전으로 기록된 이 놀라운 작전을 추진한 이는 '이언 플레밍'이란 젊은 장교였다. 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파이를 만들어낸 작가이기도 하다.
민스미트 작전의 과정을 기록한 영화 ‘Operation Mincemeat’의 한 장면.[사진 | 더스쿠프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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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봄, 스탈린그라드에서 소련군이 승리하고 북아프리카 엘 알라메인에서 영국군이 승리를 거뒀다. 연합군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스탈린은 미국과 영국 정부에 유럽에서 '제2전선'을 열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나 연합군은 당장 유럽에 대규모 상륙을 감행할 수 없었다. 연일 독일 잠수함과 사투가 벌어지는 대서양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공수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했다.
북아프리카에 상륙한 미군도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연합군은 프랑스 상륙을 연기하고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에 상륙하는 작전을 입안했다.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 주둔 병력을 이탈리아로 진격시키는 작전(허스키 작전)이었다. 독일군 역시 이탈리아가 다음 목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본국과 거리가 매우 가까웠다.
연합군 함선이 좁은 해협에 들어서면 섬과 육지 양쪽에서 협공당할 가능성이 높았다. 시칠리아를 방어하는 독일 기갑부대도 위협적이었다. 만약 기습이 성공하지 못하면 해안에 상륙하는 병사들은 집단학살을 당할 터였다.
영국 정보부는 '민스미트(Mincemeat)'로 명명한 작전을 추진했다. 연합군이 시칠리아가 아닌 그리스 침공을 준비한다는 정보를 누설해 독일군을 기만하는 작전이었다. 무엇보다도 연합군 내부에 침투한 독일군 스파이들의 눈까지 속여야만 했다.
그렇게 '윌리엄 마틴'은 서류상으로 완벽한 실존 인물이 됐다. '인물 제작' 작업이 끝난 뒤 영국 정보부는 물에 빠져 죽은 행려병자의 시신을 은밀히 찾아냈다. 그 시신에 영국 장교 군복을 입힌 다음 오른손에 수갑을 채우고 서류가방과 연결했다.
1943년 5월 1일, 스페인 남부 카디스만 부근에 침투한 영국 잠수함은 시신이 조류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가도록 방출했다. 이튿날 새벽, 스페인 어부들이 시신을 발견했다. 해안에는 수백 명의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주머니에서 나온 신분증을 확인한 어부들은 영국군 장교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관청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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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관리는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 부검했다. 폐에서 바닷물이 검출되자 부검의는 익사로 판명했다. 그리고 연합국 사령부 작전참모 윌리엄 마틴 소령이 비행기를 타고 북아프리카로 이동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당시 스페인은 중립국이었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도움을 받았던 프랑코 정부는 독일에 우호적이었다. 스페인 정부는 윌리엄 마틴 소령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사실을 발표하기 전 독일대사관에 몰래 서류를 넘겼다. 독일은 정보장교를 파견해 시신과 서류를 조사했다.
그 서류에는 북아프리카에 주둔한 미군과 영국군이 그리스를 침공한다는 계획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연합군의 최종 목표는 그리스를 점령한 후 그곳을 발판으로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 유전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플로이에슈티 유전은 독일군의 유일한 연료 공급처였다. 유전이 파괴되면 독일은 전쟁을 지속할 수 없었다.
때맞춰 영국 정부는 스페인 정부에 영국 장교의 시신과 서류를 돌려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지중해에 배치된 영국 함정들은 거짓으로 수색작업을 벌였다. 스페인 정부는 일주일 후 시신과 서류를 영국에 반환했다.
영국 정보부는 서류봉투가 개봉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작전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독일 스파이들이 윌리엄 마틴의 정보를 전송하자 독일 정보부는 비로소 서류에 적힌 내용을 신뢰했다. 그리스 주둔 독일군에 비상이 걸렸고, 병력과 장비가 보강됐다. 플로이에슈티 유전 지역 방어도 강화했다.
1943년 7월 10일, 허스키 작전이 시작됐다. 미군과 영국군은 공수부대를 앞세워 시칠리아에 상륙했다. 시칠리아에는 7만의 독일군과 20만명이 넘는 이탈리아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의를 상실한 이탈리아군은 연합군이 상륙하자마자 곧 투항했고, 곧 독일군은 궁지에 몰렸다. 독일군은 단독으로 전투에 돌입했으나 연합군의 물량 공세에 오래 버티지 못했다. 시칠리아를 한달 만에 점령한 연합군은 이탈리아로 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허스키 작전이 끝날 무렵 독일군 기갑부대는 동부전선 쿠르스크에서 패배했다. 독일은 이탈리아와 소련, 두 전선에서 싸워야만 했다. 만약 민스미트 작전이 실패했다면 연합군은 시칠리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을 터이고, 이탈리아의 항복도 늦어졌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항복한 후 독일군은 20만명이 넘는 병력을 차출해 이탈리아 전선을 지탱했다. 이듬해 그 숫자의 독일군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증강됐다면 전쟁은 훨씬 길어졌을 것이다.
이언 플레밍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추리소설을 집필했다. 그 소설의 주인공이 제임스 본드다.[사진 | 더스쿠프 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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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 윌리엄 마틴이라는 가상의 장교로 뒤바뀐 행려병자의 이름은 '글리드워 마이클'이라는 웨일스인이었다. 훗날 그는 스페인에 안장됐고 민스미트 작전은 가장 완벽한 첩보작전으로 기록됐다. 전쟁 역사상 이미 죽은 한 사람이 그토록 많은 사람을 살린 예는 없었다.
이 소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출판사의 빗발치는 요청으로 이언 플레밍은 계속 후속작을 집필했다. 총 1억부 넘게 팔린 그의 소설들은 영화로 제작됐다. 그리고 작가보다 소설의 주인공이 더 유명해졌다. 이언 플레밍이 집필한 12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스파이의 이름은 바로 '제임스 본드'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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