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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독재 희생된 가족 찾아…교도소·영안실 헤매는 시리아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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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지만 내전 기간 수감되거나 강제 실종돼 생사를 모르는 가족을 찾는 시리아인들은 교도소와 영안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11일(이하 현지시간) 미 CNN 방송을 보면 알아사드 축출을 주도한 이슬람 수니파 반군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의 지도자 아흐메드 알샤라(아부 무함마드 알줄라니)는 알아사드 정권 아래 수감자 고문과 연루된 인사들에겐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성명을 통해 "구금자 고문과 살해에 연루된 이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을 추적할 것이고, 정의 실현을 위해 도주한 이들 범죄자들을 넘겨줄 것을 각국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간 알아사드 정부 인사들과 회동해 권력 이양을 논의하고 정부군 징집병 사면을 발표하며 포용적 모습을 보인 반군이 이 문제에 대해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힌 것이다.

이날 알샤라는 <로이터> 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전 정권의 보안군을 해체하고 악명 높은 교도소의 문을 닫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알아사드 정권 아래 고문과 살해가 자행됐던 교도소는 공포 통치의 상징이었다. 반군은 지난 8일 다마스쿠스 탈환 직후 "인간 도살장"으로 불린 다마스쿠스 인근 세드나야 교도소의 수감자들을 석방했다. 이 교도소의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2011년 시리아 내전 이후 정권 반대자들이 집중적으로 수감된 이 교도소에서 고문, 강간, 구타, 학대가 일상이었다고 밝혔다.

최대 2만 명까지 수용한 이 교도소에선 불법 처형 또한 빈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앰네스티는 2016년 보고서에서 2011~2015년 사이 시리아 전역에서 적어도 1만7723명이 구금 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세드나야 교도소 쪽은 수감자들에게 변호사 접견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가족들에게 수감자의 생사를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 때문에 알아사드가 축출된 뒤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교도소와 인근 병원 영안실에서 수감된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려 애쓰고 있다.

<AP> 통신은 11일에도 다마스쿠스 알모즈타헤드 병원 영안실에 수많은 시리아인들이 몰렸다고 보도했다. 병원 쪽은 영안실 밖에 주검 사진을 붙여 가족들이 이를 통해 일차적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세드나야 교도소 등에서 발견된 주검이 날마다 수십 구씩 인근 병원 영안실로 옮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통신은 여전히 죄수복을 입고 있는 주검들에서 총상 및 고문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이날 영안실에서 형제 사미의 주검을 발견한 모하마드 채이브는 <AP>에 영문 모를 혐의로 수감됐던 사미의 주검에 눈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미는 비명을 지르며 죽은 것으로 보였다. 주검의 상태가 온전치 않은 상황에서 채이브는 어릴 적 입은 손가락 상처 등을 통해 사미를 알아봤다고 한다. 그는 5달 전 수감된 사미가 장기매매, 마약, 무기 거래 혐의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는 그 어떤 것과도 관련이 없었다"며 그의 수감 이유를 끝까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날 다마스쿠스 교외 하라스타 병원에선 시리아 감옥의 고문 실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한 활동가 마젠 알하마다의 죽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2011년 반정부 시위 참여 뒤 구금된 알하마다는 2013년 석방 뒤 네덜란드에서 망명 허가를 받았지만 2020년 귀국을 택했고 다마스쿠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돼 소식이 끊겼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시리아 전쟁 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비영리 단체 국제정의·책임위원회 스티븐 랩 의장은 알하마다 및 함께 주검으로 발견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정권 함락 직전 서둘러 살해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이 생존할 경우 고문자들에 불리한 증거를 제시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세드나야 교도소에 갇혀 있던 4000명 이상이 풀려났고 교도소 전역을 수색한 시리아 민방위대 화이트헬멧이 9일 발견되지 않은 비밀 감방은 없었다고 밝혔지만 실종된 가족을 찾지 못한 시리아인들은 '숨겨진 방'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교도소 바닥과 벽을 두드리며 10일에도 이를 찾고 있었다고 미 NBC 방송이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알아사드 축출로 인한 기쁨이 감옥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10만 명 중 대부분이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현실로 인해 잦아들었다고 전했다.

나머지 시리아인들은 빠르게 일상을 되찾아 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 수천 명의 공무원이 직무에 복귀했고 불안에 떨던 다마스쿠스 주민들은 집 밖으로 나가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향후 나라의 운명에 대해 열띤 추측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다시 문을 연 의류 매장엔 손님이 몰려들었고 노점상들도 장사를 재개했다. 11일 시리아 중앙은행 직원들은 금고가 약탈 당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정부의 통계 통제로 인해 인플레이션조차 제대로 측정할 수 없었던 중앙은행 관료, 역시 정부 통제로 인해 물류 제한을 겪었던 우편국 관료 등 시리아 공무원들이 국가 정상화에 대한 희망을 쏟아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알카에다 하부 조직을 전신으로 둔 주도적 반군 HTS가 계속해서 소수 종파, 소수 민족에 대한 포용적 태도를 취할지에 대한 두려움은 주민들 사이에 여전히 깔려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소수 종교를 믿는 한 중앙은행 직원은 최근 아내에게 외출 때 머리 가리개를 쓰라고 조언했다고 신문에 말했다. 그는 "지금까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반군은 올바른 성명을 내고 있다"면서도 "우린 매우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나라 밖의 시리아인들도 강제 귀국 우려에 빠져 들었다. 11일 <로이터>는 영국 등 유럽에 살고 있는 시리아 난민 10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에게 귀국은 모든 것을 걸고 일군 새 삶의 종말을 의미했다고 전했다.

9년 전에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시리아를 떠나 2년간의 여정 끝에 수단, 이란, 튀르키예를 거쳐 그리스에 정착한 나젬 알무사는 <로이터>에 "나는 내 삶이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는 아테네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3~13살의 그의 다섯 자녀들은 모두 그리스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시리아에서 사용하는 아랍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그는 그리스 체류 허가 갱신을 앞두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하자 난민 혐오 급증에 시달리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곧바로 시리아인들의 망명 신청 절차를 중단했다. 관련해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10일 유럽 국가들에 "인내심"을 촉구했다.

프레시안

▲11일(현지시간) 시리아인들이 수도 다마스쿠스의 알모즈타헤드 병원 영안실 밖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생사를 모르거나 사망한 자신의 가족이 그 중에 있는지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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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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