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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3 (금)

[김장현의 테크와 사람] 〈64〉필터 버블과 메아리방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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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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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1980년 5월에 쓰여진 한 야학 교사의 일기에 있는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을 보고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소년이 온다'를 쓸 수 있었다고 했다. 40여년이 지난 이번 사태에서 발표된 포고문은 '처단'과 같은 단어들로 무시무시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강제로 가둘 지하 벙커와 의료진까지 준비시켰다는 보도가 있는 것을 보면,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발생한 사상자 이상의 크나 큰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군인과 경찰이 시민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것은 어쩌면 지난 권위주의 정부와 시민의 충돌에서 발생한 희생자들의 피와 땀이 역사에 아로새겨져 비폭력 규범이 형성되었고, 그날 밤의 당사자들은 그러한 규범에 익숙해져 폭력 행사에 망설이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군대의 국회 진입 그 자체가 엄청난 국가 폭력임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상자가 없었던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희생된 수많은 시민들의 역사적 고통이 오늘로 전해져,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번 사태를 일으킨 세력이 극단주의 유튜브 채널에 경도되어 잘못된 역사관과 시국 인식을 가진 것이 사태의 시발점이 아닐까 하는 주장을 보도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용자의 검색 기록과 취향, 이용자 정보를 기반으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도록 짜여진 알고리즘이 극단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그러한 가치관을 배양하고 심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과정을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부른다. 필터버블은 이용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정보에 쉽게 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알고리즘 기반 메커니즘의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버블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이용자 스스로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다. 또 정보제공자들도 이용자가 평소에 즐겨보지 않는 성향의 정보들을 이용자에게 노출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정보의 다양성도 이용자 만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편향된 가치관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댓글, 공개 대화방,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확산되고 극단화되는데, 이것은 메아리방(Echo Chamber) 효과라고 불리운다. 비슷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더 쉽게 소통하게 되는 동류선호(Homophily) 현상 때문에 메아리방 효과가 나타나기 쉽다. 특정 학교 동문, 특정 지역 출신들끼리 주요 의사결정 라인을 장악하게 되는 현상 역시 동류선호의 결과이며, 이것은 집단사고(Groupthink)라는 병리적 현상을 일으켜 반대 의견에 눈감고 극단적 행동과 같은 파국적 결과로 돌진하게 되는 것이다.

해롤드 이니스라는 매체사학자는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소비되는 양식이 곧 권력관계를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과 같은 개인화된 매체가 왜곡된 방식으로 소비되고, 그러한 과정에서 가치관이 극단화되고, 극단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 병리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모두가 가치관의 광장, 생각의 자유 시장에 나와 다른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관용과 소통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사회지도층이라 불리우는 사람들부터 편향된 가치관을 극복하기 위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김장현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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