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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27년 벤처 역정을 통해 모색하는 바이오 산업의 미래 [김선영의 K-바이오 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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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새로운 '먹거리 산업'으로 거론되지만, 불확실성도 여전한 한국 바이오 산업. 바이오 분야 '1호 교수 창업자'이자, 지난 27년간 글로벌 수준의 과제에서 성패와 영욕을 경험한 김선영 교수가 우리 산업 생태계의 이슈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세계 진출 방안을 모색한다.


얼어붙은 투자, 위기의 바이오
신약에 도전하는 연구자 창업
글로벌 진출 위한 경험담 공유
한국일보

삽화=박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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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연구개발(R&D) 중심의 바이오기업들이 임상 실패와 경영난에 시달린다. 바이오가 대한민국의 차세대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느냐는 회의론마저 나온다. 그러나 필자는 산·학·연·관의 지혜로운 협력이 이뤄진다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1996년 국내 최초로 교수로서 대학에 벤처기업 ㈜바이로메드를 설립했다. 2005년 상장 후 신약개발과 글로벌 임상에 집중하다가 지난 3월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설립한 이후 학자로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들에 도전했다. 국내 최초 학내 벤처 설립, 유전자 치료 연구 시작, 국내 개발 신개념 약물의 미국·중국 임상 3상 실시 등이었다. 확장기 회사의 시가총액은 4조 원을 넘었다. 하지만 회사를 떠나기 직전 3년은 시련으로 점철됐고, 유전자 치료제 시장 진입을 목전에 두고 회사를 떠났다.

필자는 회사 재직시절 유전자 치료제에 대해 미국, 한국, 중국에서 6개 질환에 대해 임상시험을 실시했다. DPN(당뇨병성신경증)과 CLI(중증하지허혈)는 미국과 중국에서 임상 3상까지 실시했는데 CLI에서 매우 좋은 결과를 얻었다. CLI는 현재 마땅한 치료제가 없고 중국에 600만 명, 미국에 200만 명 환자가 있는 거대 질환이어서, 전문가들은 2030년대 초에 유관 질환의 세계시장 규모가 20조 원을 훌쩍 넘을 것이라 예측한다.

우리가 개발한 약물은 개념도, 물질도 모두 새로운 "퍼스트인클라스" 의약이다. 중국 정부에 의해 혁신의약으로 분류된 유전자 치료제를 생산하기 위해, 현지 파트너사는 베이징 외곽에 6,00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이 기술을 기반으로 상장한 중국 회사는 시총이 8,000억 원대에 이른다.

우리는 DPN과 CLI 두개 질환 중 하나에서만이라도 성공하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회사에는 이를 실행할 자금도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1월 임상 3상의 성공 소식을 알리고 회사를 떠나야 했고, 이런 좋은 소식에도 불구하고 지금 회사 주가는 청산가치 수준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필자는 회사를 그만둔 후,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을 가졌다. 과학과 임상도 중요했지만, 나와 회사를 강타한 것은 다른 요인들이었다. 예를 들면 유상증자, 주식담보대출, 지배구조 취약, 주주 관계, 아수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운(運)이라는 것도 있었다. 결국 R&D에는 성공하고, 다른 뭔가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성공은 물론 실패에도 개인과 사회의 자본이 많이 투입되어 있다. 실패 경험담을 열심히 분석하여 미래를 위한 지식자산으로 삼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은 최강국이다. 지난 40여 년 연구자, 교수, 기업가로서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성공과 실패를 통해 얻은 정보와 교훈은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그간 사회에서 받은 기대와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성공과 실패의 경험과 그 깨달음을 글로 남겨 사회와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책을 분석하여 공개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궁형(宮刑)을 당한 사마천의 심정으로 성패와 영욕을 기술하고 인과를 분석해 보기로 했다. 이를 읽은 어느 과학자나 기업인이 용기를 얻고 도전하여, 내가 30여 년에 걸쳐 한 일을 7년에 마치고 10조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업적을 낼 수 있다면 내 연구 인생 마지막 장의 큰 보람이라 하겠다.

한국일보

김선영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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