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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목)

45년 만에 '반공법 위반 무죄' 이태영 교사 "계엄사태에 잠 못 이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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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북한 찬양했다"며 불법 구금·고문당해…징역 2년

"민주적인 나라에서 여생 보내고파"

뉴스1

이태영 씨(오른쪽)와 아내 박문옥 씨가 11일 부산지법에서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기념사진을 찍고있다.2024.12.11/ 뉴스1 ⓒ News1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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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1980년 5월 반공법 위반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이태영 교사가 비상계엄 선포가 재현된 2024년 12월, 44년 7개월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지법 형사5부(장기석 부장판사)는 11일 이태영 씨(69세)의 반공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통영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이 씨는 1980년 3월 군대에 입대한지 한달 만에 반국가단체인 북괴와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체포,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 씨가 대학 재학 중이었던 1976년부터 1978년 부산대 교정 또는 인근 식당에서 친구들에게 "김일성이나 박정희는 장기집권에 있어 마찬가지다" "반공법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고 국민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폐기돼야 한다" "나는 통일된 하나의 한국을 생각한다" 등의 발언을 했고, 이로써 북한 괴뢰집단과 수괴의 활동을 찬양해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으로 해직됐던 이 씨는 학원 등에 취업을 한 후에도 공안들의 훼방으로 해고 당하기 일쑤였고, 19년 만인 1999년에서야 김대중 정부 시절 특별사면으로 경남 남해제일고에 복직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지난 4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진화위는 사건의 판결문, 제501 보안부대의 내사자료, 수사기록 등을 조사한 결과 이 씨가 1980년 2월 29일 방위로 입대하기 이전인 1978년 초부터 1978년 9월 중순까지 501보안대의 불법적인 내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1980년 3월 20일부터 27일까지 최소 8일 동안 불법 구금됐고, 조사받는 동안 범죄사실을 시인하도록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진화위는 국가에 대해 보안사령부(현 방첩사)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불법적인 수사와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도 함께 권고했다.

이 씨는 진화위의 판단을 바탕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10월 부산지법에서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이 씨는 최후 진술에서 "6.25 전쟁 이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산주의를 접해본 적 없고 관심 가져본적 없다. 말 그대로 순수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며 "이제라도 젊어서부터 꿈꿔 온 민주적인 나라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날 "1980년 3월 8일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고, 그동안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한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 하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 명백한 위험성이 있었음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해제 사태로 다시금 악몽에 시달렸던 이 씨는 선고 직후 "40여년간 무거운 바위에 짓눌러 있었는데 이제야 내려놓은 듯하다"며 소감을 밝혔다.

아내 박문옥 씨는 "남편의 일생이 계엄으로 시작해, 계엄을 끝났다. 만약 계엄 사태가 지속되면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불안했다"며 "젊은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세상이 빨리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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