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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토)

집을 잃은 사람들..튀르키예 대지진 피해자를 만나다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 <42> ] 튀르키예 메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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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튀르키예 메르신
시로와 탄은 동갑내기 부부다. 시로는 주로 꿈을 꾸는 Dreamer이고 탄은 함께 꿈을 꾸고 꿈을 이루어주는 Executor로 참 좋은 팀이다. 일반적으로 배우자에게 "세계여행 가자!" 이런 소리를 한다면 "미쳤어?" 이런 반응이겠지만 탄은 "오! 그거 좋겠는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그들은 캠핑카를 만들어 '두번째 세계여행'을 부릉 떠났다.

3주간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숙소에서 나오는 날 주인집 가족들(꼬맹이 두명과 아저씨 두분)이 배웅을 나왔다. 탄이는 그동안 감사했다고 일일이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는데 2살쯤 되보이는 막내 꼬마는 수줍어하며 아빠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한곳에서 머물며 가진 휴식도 좋았지만 다시 길을 떠나니 또 설레고 좋다. 튀르키예 남부 지중해 연안을 따라 해안도로를 달리는 길, 옆에 펼쳐진 바다 구경에 눈이 맑아지는 듯 하다. "바닷물이 엄청 맑네."

흑해 남쪽 해안도로 버금가게 지중해쪽도 도로가 매우 잘 되어있어 드라이브하기에 좋다. 이런것이 내 차로 여행하는 최고의 장점인것 같다. 배낭여행이나 단체여행으로는 올 수 없는 곳을 찾아다니고 발견하는 기쁨. 해안도로로 유명한 이탈리아 아말피에도 가봤지만 내 마음속 최고는 튀르키예 해안도로들이다. 아말피보다 길도 훨씬 넓어 다니기도 편하고 구비구비 돌때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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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지중해 드라이브 코스. 사진=김태원(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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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휙 지나가기가 아쉬워 갓길에 잠시 차를 멈추었다. 푸른 하늘과 햇빛에 빛나는 푸른 지중해, 저멀리 섬들. 뒤돌면 언덕위의 집들과 초록빛 산의 풍경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꿈속인지 동화속인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예뻤다.

가는 길 길가에 비닐하우스도 많고 오렌지 나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길 옆 어떤 가게에 울트라 특대형 망에 오렌지를 가득가득 담아 매달아놓은 것을 발견했다. 가격이 너무 궁금해서 차를 세우고 물어보니 깜짝 놀랄만큼 저렴했다. 이스탄불에서도 이 정도로 싸지는 않았는데 거의 1미터 크기의 망에 가득 든 오렌지가 만원도 안했다.

대지진 이재민을 돕는 교민가족을 만나다

메르신에 도착해서 우리는 한국문화원을 운영하시는 교민가족을 만나 그댁 거실 한켠에서 일주일 이상 신세를 졌다.

김 원장님은 문화원 말고도 여러가지 일을 하시는데 최근에는 가지안테프 지역에서 피란 온 이재민들을 돕고있다고 한다. 얼마전의 대지진으로 인해 이곳 메르신에도 곳곳에서 피란민들의 텐트를 볼 수 있었고 친척들이 있는 경우 더부살이를 하거나 정부나 민간단체에서 마련한 공동대피소에서 지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마침 우리 까브리가 트럭이라 이재민들께 가져다줄 많은 양의 구호품들을 나르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양말, 속옷, 휴지 등 생필품들을 잔뜩 싣고 메르신 외곽에 카잔르라는 작은 마을에 많은 이재민이 지내는 공동대피소에 갔다.

카잔르에만 4000여명의 이재민이 머무르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간 마을회관에는 100여명의 이재민이 생활하고 있었다. 칸막이도 없이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생활중이었다. 침구와 짐들이 가득 놓여있었다. 다행히 식량수급은 어느 정도 되고 있다고 하는데 생활에 꼭 필요한 의류며 생필품이 부족해 지원하러 간 것이었다.

박스를 뜯고 물품을 분배할 테이블을 설치하고 인당 최소의 제품만 나누어드릴 수 있었다. 대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나 미디어에서는 더이상 이곳의 상황을 전하지 않지만 이재민들의 삶은 지금부터가 본격적으로 시작이라고 한다.

집을 잃은 사람들. 고향이 폐허가 되버린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복구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막막할 것이다.

대피소에서 15살 하산이라는 소년을 만나서 지진이 났던 날, 집이 흔들리고 뭔가가 무너지는 굉음이 들리고 하늘에서 파란 불빛이 번쩍였다는 생생한 당시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긴박하게 가족들의 생사를 챙기며 도망나와야했고 구조를 기다리며 추위와 공포에 떨던 일들, 미쳐 빠져나오지 못해 잔해속에서 죽은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하루 빨리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재건하고 싶다는 소년의 말이 매우 대견하게 느껴졌다. 남이 해주지 않는다고, 우리가 직접 해야한다고, 우리가 가서 다시 그곳을 일으켜 세울거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표정에서 강한 의지와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지진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2년이 걸릴지 3년이 걸릴지, 폐허로 변한 도시들이 정상적으로 복구될 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하산의 바램대로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예전의 삶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는 남의 일, 먼 나라 사람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분간의 지진으로 삶의 많은 것을 잃은 튀르키예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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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일어난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는 15세 소년 하산. 사진=김태원(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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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 구호외에도 김 원장님을 통해 메르신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화원에서 진행하는 한국어수업에 오는 학생들은 거의 한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은 우리가 있던 없던 상관안하고 K팝을 틀어놓고 수준급 K팝댄스를 연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튀르키예에서 열리는 K팝 랜덤댄스와 K팝댄스 콘테스트(공연)에 참가한 영상이 유튜브에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원장님이 자랑하셨다. 메르신 지역대표로 공연도 했다고 한다.

작은 나라인 한국의 문화파워가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감사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왔다는 우리를 매우 좋아해주고 환영해주었다.

또 원장님 부부는 우리가 아직 카흐발트(튀르키예식 아침정식)를 못먹어봤다고 하니 카흐발트를 아주 제대로 하는 메르신의 멋진 식당에 데려가주셨다. 커다란 나무도마위에 빵, 계란, 토마토, 올리브, 잼 서너가지, 치즈 등이 가득 나왔다. 메네멘이라는 토마토와 각종 야채와 계란으로 만든 요리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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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식 브런치 카흐발트. 사진=김태원(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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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것저것 많아서 무얼 먼저 어떻게 먹어야할지 행복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재료가 신선하고 다 몸에 좋을 것같은 음식들이 맛도 좋다.

두분은 한국문화원이있는 건물 1층에 한류카페를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가 3D 프로그램을 통해서 여러가지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제안해드렸더니 매우 좋아하셨다. 함께 자재상도 돌아다녀보고 조명도 보러 다녔다.

키르기스에서는 뭘 구하려고해도 물건이 없었는데 튀르키예는 타일이며 예쁜 자재들이 참 많아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이렇게 모델링도 해서 보여드리고 자재도 함께 보고나니 두분은 감이 안잡혀 몇달간 답보상태였는데 다시 진행할 의욕이 생긴다고 고마워하셨다. 우리도 조금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사모님은 손이 매우 크셔서 함께 수산시장에 가서 우리나라 꽂게정도 크기의 블루크랩을 4상자나 사왔다. 이때가 게가 잡히는 제철이라고 한다. 집에 가지고와서 어른 5~6명이 함께 손질을 하고, 아는 사람들 다 초대해서 게 파티를 벌였다.

하루는 당일코스로 문화원 선생님들과 메르신과 멀지않은 다소로 관광을 갔다.

현지사람과 같이 다니면 길을 찾아헤메지 않아도 되고 식당과 가게등에서 무얼 사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서 마음이 너무 편하고 좋다. 다소는 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고향이라고 한다. 바울 뿐만 아니라 클레오파트라등 유명한 옛사람들의 자취가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역사적인 곳이었다.

다소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클레오파트라 문. 마치 광화문의 아치형 문만 떼어다 놓은듯 벽이 하나 서있을 뿐이었지만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만나기 위해 이집트에서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너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에 무척 특별해보였다.

선생님들과 사진을 찍고 다음은 바울의 우물이라고 전해져오는 곳을 찾았다. 아기자기 조경을 잘 꾸며놓은 작은 공원 한가운데에 몇천년은 되어보이는 우물이 있다. 공원관리인이 옛날방식의 도르레같은 것으로 물을 직접 길어주었다. 우물의 깊이는 21m라고 한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한참을 돌리니 양철 양동이 가득 맑은 물이 올라왔다. 양동이에 길은 물로 우선 손을 닦고 다시 손에 우물물을 받아 마셔보았다. 바울도 이 물맛을 봤겠지? 이렇게 오래된 우물에서 아직도 맑은 물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공원에서 나와서 조금 걷다보니 다니엘의 무덤이라고 하는 곳이 나왔다. 건물안으로 들어가니 희안한 광경이 나왔다. 무덤위의 모스크를 공사하던 중 지하에 로마시대 유적을 발견했다고 한다.

지하에는 고대 유적이 복원중이고 그 위로 현대적인 건물이 서있는 보기드문 광경이다. 유리난간과 통로를 설치해서 유적의 훼손없이 볼 수 있도록 잘 만들어놓았다. 옛날에는 지진이 나면 쓰러진 건물을 그냥 흙으로 덮고 그 위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도 한개가 아닌 시대가 다른 2가지의 건축물이 모스크아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옛사람들이 만든 기둥없이 서있는 넓은 아치천장을 보니 고대의 기술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골목을 걷기만 해도 좋은 이국적이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다소의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탄이 역사가 느껴지는 구두방을 발견하고 넉살좋게 들어가 인사를 한다. 오랜 세월동안 구두를 만들어 오셨을것 같은 하얀머리의 장인이 기분좋게 자신이 만든 구두를 보여주신다. 친절한 장인의 자부심 넘치는 모습이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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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로 걸러주지 않는 튀르키예 커피는 건더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마셔야한다. 사진=김태원(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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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의 마지막 코스는 쇼핑. 다소의 중심가에 있는 한 견과류상점을 찾았다. 수십종류의 터키쉬 딜라이트와 처음보는 밤을 닮은 견과들이 여러가지가 쌓여있는 모습에 우리는 꿀통에 빠진 벌처럼 떠날줄을 모르고 구경하고 물어보고 시식도 하고 완전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나는 좋아하는 호두를 잔뜩 샀는데 한국에서는 비싼 호두를 착한 가격에 싱싱한 상태로 살 수 있어 너무너무 좋았다. 호두를 잘못사면 쩔은 맛이 나서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여기 호두는 절대 그럴일이 없다고 한다. 알도 굵고 탐스럽게 생겼다. 터키쉬 딜라이트는 보기에 너무 예쁘고 맛있게 생겼지만 얼마나 달지 무서워 살 수는 없었고 그냥 구경만 잔뜩 했다.

관광을 마치고 닭꼬치 맛집이라는 다소의 커다란 레스토랑에 갔는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몇백명도 함께 먹을 수 있을만한 넓이였다. 메뉴를 보니 먹음직스러운 사진이 있는 다양한 닭꼬치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메뉴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선생님들이 알아서 시켜주신 닭요리와 구운 고추, 싱싱한 올리브등을 정신없이 먹었다.

불맛이 가득밴 윙이며 신선한 지중해 야채들이 정말 맛있고도 건강한 먹거리였다. 탄은 다소에 들어올때부터 길가에서 파는 것을 보고 궁금해하던 빨간 음료가 있어 주문했는데 한입 마셔보더니 과일주스같이 보이는데 맛없는 야채주스라며 투덜대고는 물만 마신다. 당근을 발효시킨 음료라고한다. 이곳사람들에게는 인기있는 음료인가보다. 곳곳에서 커다란 통에 담아 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 열흘간 메르신에서 선생님들과 참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날 사모님은 마치 친정엄마처럼 먹을것들을 잔뜩 싸주셨다. 순무와 오렌지, 자몽, 말린 무화과와 말린 딸기, 직접 담그신 너무너무 맛있는 귀한 김치까지 커다란 사랑을 한아름 받았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 [시로와 탄의 '내차타고 세계여행' 365일]는 유튜브 채널 '까브리랑'에 업로드된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내 차 타고 세계여행'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영상을 참고해 주세요. <https://youtu.be/b1d_bymxX2M?si=vw9u29twTijZjhf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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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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