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계엄 선포 관련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 윤 대통령은 계암 사태 뒤 침묵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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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를 선포한 뒤 5일까지 예정됐던 모든 공개 일정을 취소했다. 정진석 비서실장 등 극소수의 참모만 만나는 등 사실상 칩거하고 있다. 4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1시간 30분가량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추경호 원내대표 등을 만난 것이 계엄 사태 이후 알려진 유일한 공개 행적이다.
윤 대통령은 5일 계엄사태 이후 사의를 밝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면직을 재가하고 신임 국방부 장관에 최병혁 주사우디대사를 지명했다. 이날 오전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굳은 얼굴로 인사 발표를 한 정 실장은 기자들과 마주하지 않으려는 듯 평소와 달리 브리핑룸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대통령실은 이날 인사 발표 외에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에 대해선 침묵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긴급 브리핑에서 “야당이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감사원장 탄핵 시도로 행정부 마저 마비시키고 있다”고 계엄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막상 탄핵이 이뤄진 뒤엔 입을 닫았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국방부 장관 인사 발표를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면직을 재가하고 신임 국방부 장관에 최병혁 주사우디대사를 지명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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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곧 다시 카메라 앞에서 계엄의 배경을 직접 밝히고 대국민 사과를 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4일 밤 11시 담화설에서 시작돼 5일 오전 담화설까지 대국민담화설은 시시각각 바뀌었지만, 실제 진행된 건 없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모든 것이 유동적인 상황이다. 7일 탄핵 투표 결과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참모도 입을 닫은 가운데, 극소수의 참모들은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메시지를 내놨다. 한 참모는 “계엄 선포는 헌법적 틀 안에서 이뤄졌다”며 “국정 마비를 방치하고 방관하는 것보다는 국정을 정상화하고 회복하기 위한 조치를 시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설령 국회에서 탄핵당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이라는 이도 있었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를 탄핵 정국에 몰아넣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는 취지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가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전민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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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는 정상 업무 수행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의 사의 표명을 반려했다. “최근 엄중한 안보 상황 하에서 안정적인 군 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육군참모총장으로서 임무 수행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에서도 민생 안정을 위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내각의 의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여권 고위 관계자는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뒤 윤 대통령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또 ‘마이 웨이’를 가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리얼미터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탄핵 찬반을 조사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73.6%였다.
여당 분위기도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상계엄 해제 뒤 국민의힘이 후속 대책으로 가장 먼저 합의한 것은 5일 자정 무렵 의원총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것이다. 한동훈 대표도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 대표가 주장한 ‘윤 대통령 탈당’도 유야무야 되는 분위기다.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대통령이 고독할 때 지도부는 뭐했나. 우리가 말벗이라도 해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그랬겠나” 등의 엄호성 발언이 쏟아졌다. 친윤계 김민전 최고위원은 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민주당이 얼마나 무도한 지 제대로 알리지 못해서 계엄이라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울먹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 국민이 국회에 무장한 계엄군이 투입되는 걸 다 지켜보았는데, 이런 식으로 수습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지금 같은 대응이면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곧 한 자릿수로 떨어질 수 있다”며 “7일 탄핵 표결은 부결될지라도, 결국 윤 대통령과 여당 모두 탄핵의 바람을 막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태인·윤지원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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