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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이슈 하마스·이스라엘 무력충돌

[단독] "中저가도 안 끌려" 이스라엘 선박왕 30년 한국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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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금탑산업훈장 수상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아브라함 운가르 레이쉬핑그룹 회장이 4일 오후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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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운반선 등 45척, 완성차 50만대. 이스라엘의 아브라함 운가르(77) 레이쉬핑그룹 회장이 지난 30여년 간 한국 기업에 주문한 배와 자동차 물량이다. 선박 발주 금액은 36억76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 완성차와 부품 구매에 들어간 돈은 71억3000만 달러(약 10조원)에 달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운가르 회장은 5일 열린 ‘제61회 무역의 날 시상식’에서 기업인에게 주는 최고상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외국인의 금탑산업훈장 수상은 그가 처음이다.

운가르 회장은 중앙일보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중국 조선사의 매서운 저가 공세 속에서 한국 조선소를 떠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라며 “메이드 인 코리아의 기술력과 품질에 대한 신뢰가 (중국보다 더 비싼) 비용을 상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22년 글로벌 조선·해운업의 경기 회복에 따라 신규 조선 발주가 대량으로 진행될 당시 한국과 중국의 조선 건조 단가 차이는 컸다. 예컨대 7500대급 자동차 운반선의 가격은 중국산이 척당 8500만 달러로 한국산(1억2000만 달러)보다 3500만 달러 저렴했다. 당시 10척의 자동차 운반선을 현대미포조선에 발주한 운가르 회장이 중국에 발주했다면 3억5000만 달러(4956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운가르 회장은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한국에 31척의 자동차 운반선을 발주해 운용한 결과 문제가 없었고, 미래를 위한 한국의 친환경 선박에 더 끌렸다“며 ”지난해에도 14척의 배를 한국 기업에 발주했다. 한국의 조선·해운업의 발전과 레이쉬핑 그룹의 성장이 궤를 함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운가르 회장과 한국 인연의 매개는 한국의 자동차였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자동차 수입업체인 ‘탈카르 주식회사’를 운영했다. 그는 “파나마에서 자동차 수입업자로 일하던 지인이 1980년대 중반 미국으로 수출된 포니를 들여와 판매했다”며 “전쟁의 폐허를 빨리 딛고 일어나 자동차까지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는 나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한국행은 쉽지 않았다. 당시 중동 정세 등의 여파로 1978년부터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이 폐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1992년 대사관이 다시 열리며 기회가 찾아왔다.

1993년 봄 한국을 처음 찾았다는 운가르 회장은 “이스라엘에선 아무도 한국과 사업을 안 하던 시절이라 제일 먼저 오고 싶었다”며 “당시 서울을 보면서 사막의 기적을 이룬 이스라엘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느꼈다.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한국 사람들의 강인한 정신과 근면·성실한 모습에 반했다”고 말했다.

대우자동차와 수출 계약을 맺은 운가르 회장은 2002년까지 6만대의 대우차를 이스라엘 시장에 판매했다. 대우는 이스라엘 시장에 진출한 첫 국내 기업으로 기록됐다. 운가르 회장은 31년간 대우를 비롯해 쌍용자동차(1만대)·기아자동차(43만대) 등 국내 기업을 이스라엘 시장에 진출시켰다. 레이쉬핑그룹은 이스라엘 시장에서 10% 이상의 시장 점유율(판매 실적 2위)을 달성하면서 한국 자동차 브랜드 인식 제고에도 기여했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1990년대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도요타자동차가 현재는 현대차와 기아차에 이어 3위에 그친다”면서“자동차뿐만 아니라 가전·휴대전화 등 한국 제품이 월등하고 우수하다고 느끼는 이스라엘 소비자의 인식 변화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인의 열정과 에너지에 홀딱 반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젊은 세대도 K컬쳐 등에 빠져있다”며 “앞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미래 세대가 인공지능(AI)·의학·의료기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운가르 회장은 내수부진 등으로 성장정체에 놓인 한국의 경제에 대해서는 “경제는 자전거를 타는 것과 비슷해 페달을 멈추면 쓰러진다”며 “한국의 성장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기반이었던 만큼 저출산 문제 극복 등 미래를 준비하는 의사결정 페달을 밟아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취임 후 글로벌 경제에 대해선 “트럼프 당선인은 뼛속까지 비즈니스맨이라 의사결정이 빠르고 위기를 초래하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며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 지역과 우크라이나의 질서 유지를 꾀하면서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곽재민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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