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운전 공화국
5년간 면허취소 9.2% 늘고 면허정지 32.8% 감소
폭음에서 이어지는 숙취운전 매년 10% 차지
"음주운전 땐 신상공개…보험료도 올려야" 발의
`중독 치료 의무화` 제언도
그래픽=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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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사고 줄지만, 폭음운전은 오히려 늘어
지난 4일 새벽 출근길에 오른 직장인이 술에 취한 운전자 A씨가 몰던 차량에 치어 숨졌다. 이튿날엔 또 다른 운전자 B씨가 음주상태로 차를 몰다 30대 여성을 들이받아 숨지게 했다. 이들은 모두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 상태였다.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불러온 문재인 전 대통령의 딸 다혜 씨 역시 만취 상태에서 사고를 냈다. 최근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음주운전 사고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최근 사고에서 볼 수 있듯 만취 운전의 경우 이러한 추세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양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1만3042건으로 최근 10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음주 교통사고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지난해 6.6%로 10년 전에 비해 4%포인트 넘게 줄었다. 반면 폭음(면허 취소 수준) 운전은 증가하는 추세다.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 중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사람은 지난 5년간 8만3914명에서 9만 895명으로 늘었는데, 그 비중 역시 64.1%에서 70.8%로 커졌다. 즉, 음주운전은 줄고, 폭음운전은 늘어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폭음운전은 인지 기능이 더 저하된 상태인 만큼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더 크다. 또 만취해 판단력이 더 떨어져 운전대를 잡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음주운전으로 면허 취소가 됐었다는 30대 남성 A씨는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지만 술을 마신 그 순간엔 ‘운전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운전대를 잡게 된다”며 “사실 경찰이 매일 집 앞에서 단속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고를 내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폭음운전이 ‘숙취운전’으로 이어지는 것도 문제다.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상태지만, 운전자는 자고 일어났으니 괜찮다고 착각해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실제 오전 6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는 지난 5년간 전체 교통사고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음주사고 비율을 웃도는 수치다.
했던 사람이 또 한다…“재범률 낮출 방안 고민해야”
음주운전 재범률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문제도 크다. 최근 상습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사고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지난 10월 부산에선 음주운전으로 4번이나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운전자가 또다시 음주 상태로 운전하다 적발돼 경찰에 차량을 압수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 전체 음주운전 교통사고 7만5950건 중 3만2877건(43.3%)은 음주운전 적발 이력이 있는 음주전력자가 일으킨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를 내고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청은 음주운전 재범을 줄이고자 지난달 25일부터 ‘음주운전 방지장치 의무화 제도’를 시작했다. 5년 내 2회 이상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사람에겐 음주운전 방지장치가 설치된 차량만 운전할 수 있도록 조건부 음주운전면허를 발급하는 게 골자다. 경찰은 이 제도가 미국, 호주, 캐나다, 유럽 등에서 효과를 본 만큼 국내에서도 음주운전 재범을 줄이는 데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더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희정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음주운전자 신상공개법’을 발의했다. 사망 사고를 낸 음주운전자 또는 10년 이내 2회 이상 음주운전이 적발된 상습범들에 대해선 얼굴과 나이·이름 등을 온라인에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재범률이 상당히 높고, ‘안 걸리겠지’라는 인식이 팽배한 국내 음주운전 문화를 고려할 때 효과적인 제재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게 김 의원의 생각이다.
그는 “신상공개를 통해 ‘음주운전을 할 경우 패가망신하겠다’ 같은 생각을 운전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음주운전을 못하도록 말리는 효과까지 생길 것”이라며 “음주운전은 재범률뿐만 아니라 암수율(범죄를 저지르고도 드러나지 않은 비율)이 높은 범죄다. 신상공개 같은 비(非)형벌적 제재를 통해 음주운전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술을 자제하지 못하는 폭음·재범 운전자들에 대해 알코올 중독 치료 관점에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을 하면 안 된다’는 건 우리 모두가 알지만 술에 대한 알코올 중독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위험한 상태로 살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라며 “아직까지 술을 권하는 분위기도 많이 있고, 알코올 중독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으러 기관에 가기도 어렵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면허를 취소하고 처벌하는 것이 기본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알코올중독 의무 치료기관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중독 치료를 의무화해야 음주운전 재범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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