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KTV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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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 이후 44년 만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해 정국이 대혼란에 빠지게 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밤 10시 23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린다”며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 시키겠다”고 했다. 그런 뒤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습니다마는,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헌법 77조 1항은 ‘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추진한 22건의 탄핵 시도와 내년도 예산안 단독 감액안 처리 추진 등을 거론한 뒤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 한숨은 늘어나, 이는 자유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ㆍ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시국을 국가비상사태인 내란(內亂)으로 규정한 것이다.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구분되는데, 윤 대통령이 내린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交戰)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攪亂)되어 행정 및 사법(司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발동된다. 비상계엄은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 발동되는 ‘경비 계엄’보다 더 긴급한 상황에 내려지는 조치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한 만큼 현재의 정치 상황을 ‘적과의 교전’이라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그 이유와 종류, 시행일시, 시행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해야 한다. 지체 없이 국회에도 통고해야 한다.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급(將星級) 장교 중에서 국방부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윤 대통령이 임명한다. 계엄 업무를 시행하기 위해선 계엄사령부를 두며, 게엄사령관은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의 지휘 감독을 받는다.
이날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통해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한다”며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등 6가지 조치를 포고했다. 그러면서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 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 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국회는 폐쇄됐다. 기자실 역시 사실상 폐쇄 조치에 들어갔다. 국방부는 기자단 퇴거를 요청하면서 4일부터 기자실 출입 금지를 통보했다.
비상계엄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과 사법 사무를 관장한다.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ㆍ구금(拘禁)ㆍ압수ㆍ수색ㆍ거주ㆍ이전ㆍ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동원(動員) 또는 징발도 가능하다.
비상계엄지역에선 내란과 외란, 공무방해와 국교 및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 등을 위반할 경우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윤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정당한 국가 기관을 교란시키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를 하고 있다”고 밝힌 부분은 야당에 대한 군사 재판을 고려하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지점이다.
다만 윤 대통령은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을 계엄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계엄을 해제하여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민주당은 곧바로 계엄 해제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수립 이후 지금까지 계엄령은 모두 16번이 선포됐고, 이 중 비상계엄령은 12번 선포됐다.
이날 계엄령은 심야에 기습적으로 발표됐다. 대통령실 핵심 참모진마저 일상적인 만찬을 하다가 계엄령 선포 30여분 전에야 대통령실로 긴급 복귀하는 등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방송 중계를 진행할 방송사에 발표 주체와 내용도 특정하지 않은 채 “생중계를 준비하라”는 공지만 전달됐고,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윤 대통령이 생방송을 시작한 뒤에도 발표 내용을 알 수 없었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 내부에서 강력 반발이 나왔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을 배반했다. 이 순간부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허진·박태인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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