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와 갈등끝에 사실상 경질
적자 확대속 칩스법 지원금 삭감
CPU도 AMD에 밀리자 은퇴 종용
겔싱어 "달콤 씁쓸···평생의 영광"
이사회, 외부서 새 CEO영입 검토
블룸버그 "사업분할 재추진 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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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의 파운드리 복귀를 이끌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가 결국 사임했다. 공식 발표는 ‘은퇴’지만 거액의 파운드리 투자 부담과 실적 악화로 사실상 경질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텔은 새 CEO를 찾아 나설 계획이지만 누가 와도 수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겔싱어의 사임으로 분할 매각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2일(현지 시간) 인텔은 겔싱어 CEO가 이달 1일 은퇴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겔싱어 CEO는 매우 존경받는 리더이자 숙련된 기술자로서 혁신을 주도하고 광범위한 글로벌 기술 산업을 발전시켰다”며 헌사를 보냈다. 겔싱어 CEO는 “달콤 씁쓸하다”면서도 “인텔은 내 삶과 같았고 CEO로 이끄는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은 “겔싱어 CEO와 갈등을 빚어온 이사회가 지난주 은퇴와 해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겔싱어 CEO가 1979년부터 인텔에서 일해온 ‘성골’이고 존경받는 반도체 엔지니어인 만큼 최소한의 예우로 은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겔싱어 CEO는 18세에 인텔에 입사해 386·486 CPU 설계를 도맡았고 32세이던 1989년 인텔 최연소 임원이 됐다. 와이파이·USB 등 인텔에서 시작돼 테크계 표준이 된 기술 개발을 주도했으며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다. 이후 2012년부터는 VM웨어 CEO를 맡아 회사를 성공적으로 성장시켰다.
겔싱어 CEO는 2021년 2월부터 ‘친정’ 인텔로 돌아와 미국의 반도체 리쇼어링 전략에 따른 파운드리 복귀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 부담과 불확실한 수주 전망이 발목을 잡았다. 인텔은 미국에만 1000억 달러 이상을 들여 파운드리를 건설 중이지만 TSMC 대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주된 수익원이던 CPU에서도 경쟁사 AMD에 밀리며 투자 부담을 지탱할 현금 흐름도 나빠졌다. 실제로 인텔은 올 2분기 순손실 16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에도 166억 달러의 손실을 내며 창사 이래 최악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인텔의 ‘동아줄’이던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칩스법) 지원금이 삭감된 점도 겔싱어 CEO의 낙마 원인으로 꼽힌다. 인텔은 반도체법 입법을 위한 로비에 큰 공을 들여왔다. 겔싱어 CEO 또한 ‘반도체법 전도사’와 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반도체법 지원금 최종 계약을 맺으며 인텔에 대한 지원금을 기존 85억 달러에서 79억 달러로 줄였고 110억 달러 상당의 정책 대출도 철회했다. 실적 악화가 투자 부진을 불러오고, 투자 부진이 지원금을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진 셈이다.
겔싱어 CEO가 최악의 상황에서 낙마하게 됐으나 테크계 여론은 그에게 동정적이다. 이미 인텔은 겔싱어 CEO가 오기 전부터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던 탓이다. 인텔은 2018년 사내연애 추문으로 사퇴한 브라이언 크러재니치 전 CEO 시절 연구개발(R&D), 미래전략 부재로 깊은 수렁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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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겔싱어 CEO를 대체할 리더를 구하는 일이 시급하다. 당장은 데이비드 진스너 최고재무책임자(CFO)와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 클라이언트컴퓨팅그룹(CCG) 수석부사장이 공동 CEO로 활동하지만 이사회는 “겔싱어 CEO의 정식 후임자를 신속하게 찾겠다”며 외부 CEO 영입 의지를 드러냈다. 인텔은 겔싱어 CEO 영입 전 경쟁사인 AMD의 리사 수 CEO에게 접근했던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인텔이 깊숙한 곳까지 망가져 있는 만큼 자리를 선뜻 맡을 거물급 인사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인텔이 사업부별로 분할돼 각자도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임시 공동 CEO가 된 홀트하우스 수석부사장은 제품들을 아우르는 ‘프로덕트 그룹’을 맡게 됐고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IFS) 등도 그대로 유지된다. 제품 개발과 파운드리, 이미 분사한 알테라·모빌아이 등이 분할돼 각각 매각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블룸버그통신은 “이사회는 사업 분할에 찬성했으나 겔싱어 CEO는 반대한 점이 해임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며 “이사회가 원하던 대로 회사가 분할 매각될 가능성이 더 커졌다”고 짚었다.
한편 이날 인텔 주가는 장중 5%까지 올랐으나 결국 0.5% 하락 마감했다. 반면 경쟁사 AMD와 TSMC는 각각 3.56%, 5.27% 올랐다. 시장은 겔싱어 CEO 낙마가 인텔이 아닌 경쟁사에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실리콘밸리=윤민혁 특파원 beheren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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