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인 검찰의 위법수사와 증거 은폐 주장
변호인 "경계성 지능 장애 악용" 주장…당시 검사·수사관 증인 신청
인터뷰하는 박준영 변호사 |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경계성 장애인을 상대로 '사람을 죽였다'는 자백을 고문 등 물리적 가혹행위도 없이 받아낸 사례입니다."
광주고법 형사2부(이의영 고법판사)는 3일 살인과 존속살인 혐의로 각각 기소된 A(74)씨와 딸 B(40)씨에 대한 재심 첫 공판 기일을 열었다.
검찰은 여전히 피고인들의 유죄를 주장했지만,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인은 검찰의 위법 수사와 증거 은폐 의혹 등을 제기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경계성 장애인에 대한 사법절차에 대해 성찰할 지점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피고인 측 무죄 근거를 상세히 살펴봤다.
◇ 피고인 측 변호인 "경계성 작용 악용해 검찰 위법 수사"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피고인들의 자백을 토대로 검찰이 기소한 사건인데, 박 변호사는 자백받아내는 과정이 검찰의 위법 수사로 점철됐다고 주장했다.
검사와 수사관은 피고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포승줄과 수갑을 채워 신문하며 압박을 가했고, 이틀에 걸쳐 26시간을 연이어 조사하며 야간 조사에 대한 동의도 사후에 받았다고 변호인은 봤다.
또 장시간 야간 조사를 통해 피고인들의 저항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었고, 진술거부권과 변호사 조력권 고지도 위법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사와 수사관이 가설 시나리오를 주입해 제멋대로 작성한 조서의 열람권은 글을 읽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피고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박 변호사는 경계성 장애를 지닌 피고인들의 취약성을 검찰이 악용했다고 강조했다.
강압, 기만, 회유 등 위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 신문을 받았고, 진술 내용도 왜곡·허위로 가장해 기재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범행 동기도 검찰이 허위로 꾸며낸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당사자들이 부인했음에도 검찰은 반복적으로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진술을 주입했고, 피고인의 수동적인 답변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가 아내이자 친모를 살해하려는 동기가 됐다고 꾸몄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실적에 눈이 먼 검사나 수사관이 부녀를 범인으로 만들고 부적절한 성관계라는 범행 동기까지 꾸며낸 사건이다"며 "검찰은 피고인들이 범인으로 보이도록 여러 위법한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문 등 물리적 강압에 의한 허위 자백 사례와 달리 이번 사건은 피고인들의 경계성 장애라는 취약한 특성을 강압수사로 악용한 사례다"며 "당시 수사 검사와 수사관을 증인으로 소환해 신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피고인 출소 |
◇ "검찰이 무죄 입증 증거도 감춰"…수사 검사 등 증인 소환 신청
박 변호사는 검찰이 피고인들의 무죄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숨기는 방식으로 사건을 왜곡했다고도 주장했다.
경찰은 범행에 쓰인 막걸리 구매일을 특정 기간으로 특정하고 해당 기간의 CC(폐쇄회로)TV를 확보했는데, 막걸리를 구매했다고 특정된 날짜에 A씨의 차량이 이동한 증거가 없었다.
이는 막걸리를 피고인들이 구매했다는 공소사실을 반증하는 무죄의 증거임에도 검찰은 해당 증거를 적극적으로 감추는 방식으로 증거를 왜곡했다는 것이 피고인 측 의심이다.
또 막걸리에 청산가리를 넣는 데 쓰였다는 숟가락에서도 청산가리가 검출되지 않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도 검찰은 숨겼다고 변호인은 봤다.
특히 막걸리에 투입된 청산가리 양은 29.63g으로 숟가락으로 8번가량 떠야 하는 양인데, 검찰은 투입량을 잘못 계산해 2번 떠 넣었다고 피고인의 진술을 꿰맞췄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청산가리 구매 경로도 오이 농사 해충 방제에 쓰기 위해 17년 전에 사다 놓았다고 특정했는데, 이를 뒤집는 "오이 농사에 청산가리를 쓰지 않는다"는 농민들의 진술도 검찰은 감췄다고 피고인 측은 밝혔다.
박 변호사는 자신들의 무죄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100여개가 넘는 증거를 재심 재판부에 제출하는 한편, 당시 수사 검사와 수사관을 비롯한 경찰, 농부, 청산가리와 심리분석 전문가(교수) 등 13명 증인도 신문해 달라고 신청했다.
한편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2009년 7월 6일 전남 순천의 한 마을에서 막걸리를 마신 주민 2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친 사건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부녀는 살인 혐의에 대해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유죄형이 확정됐다.
이들은 박 변호사의 도움으로 검찰의 위법 수사와 증거 은폐 등을 주장해 재심을 신청해 사건 발생 15년 만에 이번 재심 재판을 받게 됐다.
재심 개시 결정과 함께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부녀는 현재 다른 가족의 도움으로 지내며 다시 재판받게 됐다.
이들은 '부녀간 부적절한 관계'라는 억울한 낙인에 언론 노출을 꺼리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번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돼야 함은 물론 피고인들에게 부녀간 부적절 관계라는 억울함도 풀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현장 검증 |
pch80@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