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반도체 전쟁.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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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2일(현지시각) 발표한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통제 조처에 대해, 중국은 “단호히 반대한다.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공지능(AI) 기술을 놓고 벌이는 양국의 미래 패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미국이 수출 통제 조처를 발표한 직후 대변인 명의의 질의응답 자료를 내어 “미국의 통제 조치 남용은 여러 국가의 정상적인 경제무역 거래를 심각하게 방해하고, 글로벌 산업 공급망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며 “중국은 이에 단호히 반대한다. 정당한 권익을 단호하게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무부는 “이번 조처는 반도체 제조장비, 메모리 반도체 및 기타 품목의 대중 수출통제를 더 강화하고 136개 중국 기업을 수출 통제 기업 목록에 추가하며 중국과 제3국 간 무역에 간섭하는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 행위이자 비시장적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도 비슷한 내용의 논평을 냈다. 외교부는 “미국은 수출통제를 남용해서, 중국을 악의적으로 봉쇄하고 억압했다”며 “이는 시장경제와 공정경쟁 원칙을 위반하고 국제무역 질서를 파괴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가의 이익을 해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관보를 통해 ‘중국의 군사용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 제한을 위한 수출통제 강화’ 조처를 발표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가 처음으로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대상에 올랐고,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도 통제 대상에 추가됐다. 중국 정부의 통제 아래 있는 중국 기업 등 140곳도 제재 리스트인 ‘우려 거래자’(EL) 목록에 추가로 올랐다.
미 상무부는 “이번 조처는 중국의 군 현대화 및 인권 억압에 필요한 기술 개발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쟁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중국의 첨단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늦추고, 중국의 자체 반도체 생태계를 약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미국 수출통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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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군사적 이유를 들었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인공지능 기술을 국가 핵심 사업으로 키우고 있지만, 주요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를 원활하게 생산하지 못하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한국 기업 중 고대역폭메모리 기술이 앞서는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중국 수출 물량이 없지만, 상대적으로 기술이 떨어지는 삼성전자는 고대역폭메모리 매출의 20~30%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중국 고대역폭메모리 시장의 구체적인 규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 통제에 맞서 기술 자립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 들어 2035년을 과학기술 강국 건설 목표로 제시하고 과학기술 자립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5월 세 번째이자 역대 최대인 64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는데, 생산설비와 재료, 고대역폭메모리 등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 등을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중국은 이미 저사양 고대역폭메모리는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대만 매체들은 지난 8월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고대역폭메모리의 생산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창신메모리가 생산하는 제품은 하이닉스나 삼성 등 제품보다 사양이 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생산 속도가 애초 예상보다 1~2년 앞당겨진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미국의 기술 통제 대상에 창신메모리가 포함되지 않은 점도 눈길을 끈다. 애초 미 상무부 일부 관리들은 창신메모리를 규제 대상에 포함하려 했으나, 다른 제한 조처로도 해당 제품 생산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으로 최종적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은 “예상했던 것보다 제재 강도가 낮다”고 평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인공지능 전문가 그레고리 앨런은 “중국에서 가장 유력한 고대역폭메모리 생산 기업 중 하나인 창신메모리에 장비 판매를 계속 허용하면서, 중국으로의 고대역폭메모리 및 인공지능 칩 판매를 차단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일본과 네덜란드가 장비 수출 때 미 상무부에 보고해야 하는 제재 대상에서 빠졌는데, 중국이 이들 장비를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제재를 피해 동남아시아 등을 통해 고대역폭메모리 기술의 습득을 시도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지난해 10월 반도체 수출 통제 조처를 발표하면서 우회수출 방지를 위해 모기업의 소재를 파악하는 규정을 포함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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