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심우정 검찰총장이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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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출입 기자 시절이다. 강력팀 소속 ‘형님’이 한 경찰관이 사고를 친 내용의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정신 나간 경찰! 10만 명 넘는 경찰 중에서 한 명 잘못했다고 경찰 전체를 다 싸잡아서 정신 나갔다고 하는 건 과하지 않아?”
‘얼빠진’ ‘정신 나간’ 등 당시 흔한 제목이었다. “요즘 젊은 애들은…” “남자는 다 똑같아” 등 보통은 부정적 내용으로 한 집단을 싸잡아서 규정하고 또 평가하는 표현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 직군을 비하하는 ‘짭새’(경찰),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말은 흔해졌고, 직업 공무원들에겐 ‘복지부동’이라는 용어가 따라다닌다. 현실적으로 맞는 얘기일 수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비약이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규정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랄까.
검찰은 좀 다르다. 태생이 ‘검사동일체’(檢事同一體) 원칙이다. 검찰권 행사가 동일한 기준에 의해 일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취지로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 관계를 설정했다. 이 원칙에 따라 고위 수뇌부가 후배 검사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가한다는 비판이 나왔고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1949년 검찰청법)는 조항은 ‘검찰사무에 관해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현행법)고 바뀌었지만 실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들 한다.
근래 대표적인 사례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이었던 2020년 11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징계 청구 명령을 받았을 때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만 중용하는 분위기에 수많은 검사들이 검찰을 떠났고, 당시 윤 대통령에 대한 검찰 내 지지율은 바닥을 쳤던 시기지만, 사실상 윤 총장 축출 분위기에 평검사부터 고검장까지, 심지어 ‘비(非)윤석열’ 검사들도 한목소리를 내며 추 전 장관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당시 차장검사였던 한 변호사는 “추 장관 조치에 검찰 내 공분이 조성된 건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윤 총장이 이를 자신에 대한 지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라고 말하기도 했다.
4년이 지난 요즘, 검찰 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데 대해 야당에서 해당 사건 수사지휘권이 없는 심우정 총장을 탄핵한다고 했을 때 공개적으로 반발한 검사는 드물었다. 직접 처분 결정을 내린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3명의 검사에 대한 탄핵이 임박했을 때도 그가 속한 서울중앙지검 소속 간부, 그리고 심우정 총장 및 대검찰청이 즉각 반발했지만, 평검사들은 회의를 열고도 즉각 반대 성명을 내지 않았다. 다른 청도 지극히 조용하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김 여사에 대한 검찰 내 부정적 인식에 대한 방증”이라면서 “게다가 반대해 봐야 거대 야당이 주도하는 탄핵 소추를 막을 수 없다는 회의론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총장과 달리 서울중앙지검장은 대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라면서 “조직보다는 개인적 유불리를 따져보는 젊은 검사들 성향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검사동일체’는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된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대방 편에 섰던 검사들을 적으로 몰아 한직으로, 퇴직으로 떠나보내면서부터 이미 허상이 됐을 수도 있겠다. 야당 숙원처럼 검찰이 없어질 날이 머지않았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검찰은 바뀌고 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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