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2 (월)

[단독] [위기의 공공헌책방(하)] 서울책보고, '헌책' 이미지 탈피...서점주 "상품 가치 떨어진 책 사가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메트로신문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운영 실적이 낮은 공공헌책방 '서울책보고'의 활성화를 위해 '헌책 판매' 이미지를 탈피하기로 하고, 중고 도서 위탁 판매를 맡긴 서점 33곳에 철수를 요청했다. 헌책방 주인들이 당장 수천 권의 책을 가져다 둘 곳이 없고, 도난방지태그가 붙어 상품 가치가 현저히 떨어졌다며 시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양측 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2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도서관으로부터 입고된 서적을 모두 가져가라는 통보를 받은 입점 서점들이 시의 불합리한 정책을 규탄하며 도서 회수 거부 입장을 내놨다.

전국책방협동조합·평화서점연합회 등 책보고 입점 서점들은 "과거 서울도서관은 도서 유통의 또 다른 축인 헌책방 업계가 침체된 것을 양지하고 이를 활성화시켜 문화 서울의 한 면모를 진작시키는 장기 프로젝트라고 서울책보고 사업을 설명하면서 헌책방에 적극 참여할 것을 종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 시기 책보고 운영의 어려움을 들은 입점 서점들은 2021년 말 2차 재계약 때 판매 수수료를 10%에서 15%로 인상하는데 동의해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했다"면서 "근래에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과 함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서서히 다른 분야 도서로도 관심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상황이 나아질 것을 기대하는 중이었는데 한 번의 공청회나 사전 설명도 없이 일방적인 계약 해지와 도서 반품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시는 계약 해지가 아닌 계약 유효 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 종료라는 입장이나, 도서 위탁 판매를 맡긴 서점들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시의 부조리한 행정을 지적하며 중고 서적 반품 불가 의사를 내비쳤다. 책방들은 '도난방지태그로 인한 상품 가치 하락'과 '보관 공간 부족' 문제를 이유로 입고된 책들을 도로 가져갈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책보고 사업에 참여한 '공씨책방'의 사장 장화민 씨는 "책을 둘 곳도 없고 가져갈 수도 없다. 도난방지태그는 서울책보고에서는 괜찮지만, 책방에 오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면서 "도서관들이 폐기 처분한 책들이 나올 때가 있는데 아무리 상태가 좋아도 택 붙은 건 손님들이 싫어해서 가격을 아주 싸게 책정한다"고 털어놨다.

이에 시는 약 1700만원을 들여 가격표 겸 도난방지태그 스티커를 떼서 책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40년 넘게 책방을 운영해온 A씨는 "도자기가 깨져 금이 가면 백만원 하던 게 만원도 못 받는 일이 생긴다"며 "스티커 떼면 100% 표시 나는데 어떤 바보가 그걸 가져가겠냐"고 따져 물었다.

입점 서점 중 하나인 '숨어있는 책'의 대표 노동환 씨는 "스티커를 떼는 건데 원상복구가 되겠느냐. 코팅이 울거나 찢어져 100% 회복되지 않는다. 코팅이 안 된 책은 말할 나위가 없다"면서 "갖고 왔는데 이 상태면 1000~2000원짜리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서울책보고에서 위탁 판매 중인 서점들은 시에 현 체제(헌책 판매 중심)에서 입고 방식 등을 개선해 운영하거나 책방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직접 책보고를 꾸려 나가는 방법을 고려해줄 것을 건의했다. 만약 해당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면 입고된 책을 전량 인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시는 책보고 참여 서점들의 요구를 전부 거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지은 서울도서관장은 "소수의 서점이 이 공간에 책을 납품하며 판매하는 구조가 되면 슬럼화가 된다"면서 "지역 서점 중 헌책을 파는 일부 책방에만 서울시 예산을 투자하는 게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오 관장은 "헌책을 구매하는 방법이 YES24, 알라딘에서 당근마켓 등으로 바뀌며 판로 자체가 달라졌다. 세상이 변화하는데 계속 그분들이 고집 피운다고 해서 헌책방 위주로 돌아가면 이 책문화 공간이 활성화되겠느냐"면서 "서울의 600여개 서점이 좋은 제안을 갖고 서울책보고에서 책을 팔 수 있게 시설을 개방하는 거다. 소수 33개(서울책보고와 판매 대행 계약을 맺은 서점 수), 그중에서도 서울 내 25개 헌책방만 혜택을 보는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시는 기존 헌책 판매 중심의 서울책보고 운영 방식을 팝업스토어 형태로 바꿀 예정이다. 지금처럼 33곳의 헌책방이 중고 서적을 파는 게 아닌 서점 여러 개가 돌아가며 일정 기간 헌책, 새책 구분 없이 보유한 도서들을 큐레이션(선별)해 판매하는 식이다.

오 관장은 "더현대 같은 백화점에서 서점 팝업스토어를 하는데 매출이 엄청나다. 단순히 책 판매가 아니라 경험이 같이 녹아나야 한다. 그래서 서울책보고를 바꾸려는 것"이라며 "책문화를 놀이 경험과 결합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게 만들 거다"고 자신했다.

헌책방 사장들은 시의 팝업스토어 구상이 현실성 떨어지는 장밋빛 계획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장 씨는 "서울책보고 팝업스토어는 경의선 책거리 망한 것처럼 지속적으로 운영할 수 없을 거다"며 "헌책방은 집집마다 책이 다른데 독립서점은 다 같은 새책이다. 출판사에서 받은 같은 책들을 백화점식으로 늘어놔 봐야 새로울 게 뭐 있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장 씨는 "최근 어떤 새책방에서 '인생샷은 찍어가셔도 책샷은 찍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봤다"며 "거기도 우리랑 똑같은 거다. 사람들이 와서 구경만 하고 책을 안 산다"고 토로했다.

노 씨는 "새책들은 도서정가제 때문에 할인 제한이 들어가 팝업스토어 행사가 성공할 수 없다"며 "또 인터넷으로 사면 10%를 싸게 해준다. 사람들이 호기심에 몰릴진 몰라도 책 판매는 안 될 거다"고 예상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