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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미술의 세계

누구에게나 그리운 집 있다…한국 달동네 그림 런던서도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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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영주, '산동네 220'. 91x116.8cm 캔버스 위에 종이. 아크릴릭 2024. [사진 Almine R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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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축제 분위기인 런던 중심가. 오후 4시에 해가 떨어지면, 거리는 곳곳에 걸린 조명 장식으로 빛을 발한다. 유명 브랜드 상점과 갤러리가 즐비한 그로스버너 스퀘어 인근, 그 빛을 뒤로 하고 한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옹기종기 서로 어깨를 맞댄 판잣집과 구불구불 작은 골목길이 포근한 빛으로 둘러싸인 풍경. 한국의 달동네 밤 풍경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 정영주(54)씨의 작품들이다.

지난달 14일부터 런던 알민 레쉬(Almine Rech) 갤러리에서 정씨의 개인전 ‘집으로 가는 길(Way Back Home)’(12월 20일까지)이 열리고 있다. 정씨가 한국을 벗어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지닌 해외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민 레쉬는 1989년 파리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현재 런던과 브뤼셀, 뉴욕, 상하이, 그슈타트, 모나코, 베니스에 지점을 두고 있는 메가 갤러리다.

정씨는 2020년 이래 지난 5년 간 국내 미술 시장에서 존재감이 뚜렷해진 화가 중 한 사람이다. 2020년 방탄소년단(BTS) 리더 RM이 그의 작품을 구매해 화제가 됐고, 2022년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도 "작품이 없어서 못 팔았다"는 후문을 남겼다.

지난 3월 말 서울옥션에서는 그의 ‘사라지는 풍경 1119’가 8000만원에서 경매가 시작돼 1억 7000만원에 낙찰됐다. 국내 애호가들의 관심이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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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알린 레쉬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정영주 작가. [사진 Almin R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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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집으로 917', 181.8x227.3cm, 캔버스 위에 종이, 아크릴릭, 2024. [사진 Almine R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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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산동네'. 산동네 가을1031', 73x53cm, 캔버스위에 종이, 아크릴릭, 2023. [사진 Almine R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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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달동네 밤 풍경이 해외에서도 통할까? 이번 런던 전시는 그의 국제 경쟁력을 본격적으로 가늠해보는 자리다. 이미 여러 해에 걸쳐 홍콩 아트바젤 등 아트페어에서 출품작이 속속 팔려나가는 기록을 내왔지만, 유럽에서의 개인전은 국제 무대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간 도전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다. 전시에 나온 작품은 개막하자마자 모두 판매된 상태다.

에일린 왕 알민 레쉬 상하이 지점 디렉터는 그의 전시를 보기 위해 런던까지 찾아왔다. 지난달 21일 런던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정씨의 작품은 전시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국적과 상관없이 보는 사람에게 고향을 떠올리게 하고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막시밀리언 르포르 런던 디렉터는 "작품은 튀르키예, 프랑스, 영국, 미국, 남아공, 홍콩 등지의 고객들에게 고루 판매됐다"며 "전시 작품보다 작품을 찾는 고객 수가 훨씬 많았다"고 전했다. 알민 레쉬 측은 정씨의 뉴욕 전시를 진지하게 논의 중이다.

정씨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1997년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했다. 추상화를 그리던 그가 집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 돌아온 후 10년 정도 지난 2008년부터. 2022년 인터뷰에서 그는 "어느 날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곧 허물어질 듯한 판잣집을 보고 그 집들이 나 자신처럼 느껴져 달동네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판잣집 그림은 기법도 독특하다. 캔버스에 스케치한 뒤 구긴 한지로 지붕과 벽 모양으로 오려 붙이며 집을 하나씩 완성한 뒤 물감으로 채색한다. 특히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 가로등 불은 단순한 조명을 넘어 마음에 온기를 더하는 역할을 한다. 작고 초라해 보이는 집들이 서로 기대어 불 밝히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내일을 준비하는 포근한 보금자리로 여겨지는 이유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2년 전 국내 전시 작품과 비교해 변화가 더욱 두드러졌다. 마치 먼 거리에서 마을을 찍던 카메라가 골목 안으로 가까이 들어간 것처럼 집과 골목의 디테일이 더 잘 보이고, 빛도 더 환해졌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씨는 "판잣집을 그려나가며 화면에 불빛을 채우는 과정이 내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이었다"며 "처음엔 멀리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시작했는데 갈수록 내가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는 풍경으로 변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예전과 달리 그렇게 표현해도 내 스스로 편안해졌다. 내가 보기에도 작품이 더 따뜻해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런던=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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