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시한 임박해 예결위 처리 강행
대통령실·검경·감사원 예산 감액
여야 합의 없는 처리는 사상 초유
與 “이재명 분풀이용…속 시원한가”
野 “처리 못하면 정부 원안 자동부의
10년 만에 첫 심사 완료 뜻깊어”
황운하 “檢 수사예산 삭감 못해 아쉬워”
지역화폐 예산 등 추가 협상 가능성도
야당이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법(국회법 개정안),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법안 일방 처리, 감사원장 및 서울중앙지검장 탄핵 추진에 이어 예산안마저 의석수를 앞세워 초강수를 두면서 ‘12월 정국’이 시작도 되기 전에 꽁꽁 얼어붙었다.
박정 국회 예결위원장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13차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가결 후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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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소속 박정 예결위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오늘 오후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등에 대한 의결이 있었고, 국회법에 따라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가 내일 자정이면 종료된다는 급박한 사정이 있으며, 정부 부처 기관장들이 모두 국회 인근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던 현실을 고려해 2025년도 예산안과 2025년도 기금 운용 계획안, 2025년도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 등 3건을 추가 상정한다”고 밝혔다.
이날 처리된 예산안은 677조4000억원 규모의 정부 원안에서 4조1000억원이 삭감됐다. 감액 내역은 △예비비 2조4000억원 △국고채 이자 상환 비용 5000억원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수활동비 82억5100만원 △검찰 특정업무경비 506억9100만원 및 특수활동비 80억900만원 △감사원 특경비 45억원 및 특활비 15억원 △경찰 특활비 31억6000만원 등이다.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 한도에서 미리 책정하는 금액을 말하는 예비비 삭감 규모가 가장 컸고, 대통령실과 검경 예산도 대폭 감액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국무위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3차 전체회의가 끝난 뒤 퇴장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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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예결위원들은 “이재명 대표 분풀이를 위해 특경비, 특활비 삭감하면 속이 시원한가. 어제 체포동의안 부결된 신영대 의원님, 1심에서 실형 선고 받은 황운하 의원님 속이 시원한가. 검경 업무 못하게 마비시키고 속이 시원한가”(곽규택 의원), “이럴 거면 예결위를 왜 운영하느냐”(박수민 의원), “마약사범과 디지털 성범죄자 찾아내는 데 쓰이는 검경 특활비를 삭감하는 게 대한민국 제1야당 맞느냐”(최은석 의원)고 따졌지만 소용 없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예산안 일방 처리에 반발해 표결 직전 퇴장했고, 야당 의원들만 남아 예산안을 처리했다.
국회법 제85조의3
① 위원회는 예산안, 기금운용계획안,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과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의 심사를 매년 11월 30일까지 마쳐야 한다.
② 위원회가 예산안등과 제4항에 따라 지정된 세입예산안 부수 법률안에 대하여 제1항에 따른 기한까지 심사를 마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그 다음 날에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치고 바로 본회의에 부의된 것으로 본다. 다만,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합의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민주당은 예결위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하면 법정 처리시한인 12월 2일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부의되기 때문에 감액만 반영한 예산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박정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제13차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 퇴장 속에 정부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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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따르면 국회가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예산 항목을 신설하려면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감액은 정부 동의 없이 가능하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허영 의원은 “자동부의 제도가 예결위 심사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현실 하에서 밀실 심사, 쪽지 예산 등 심사 투명성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증액 심사를 위해 3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법정 시한 준수를 위해 부득이 감액안에 대해서만 의결할 수밖에 없다”며 “자동부의제 도입 이후 10년 만에 최초로 예결위가 심사를 완료한 선례를 만들어 뜻깊다”고 했다.
헌법
제54조 ② 정부는 회계연도마다 예산안을 편성하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까지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
제57조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
이후 국민의힘 예결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로지 민주당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분풀이식 삭감”이라며 “민생의 보루인 예산마저도 이재명 아래에 있다는 것을 민주당 스스로 증명한 흑역사로 남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입장문을 내고 “예비비 대폭 삭감으로 재해·재난 등 예측하지 못한 사태에 즉시 대처하지 못하게 되고, 특활비·특경비 전액 삭감으로 검경의 신종 민생침해범죄 수사 및 감사원의 위법·부당행위 감사가 어려워지는 등 야당의 일방적인 감액 예산안 의결에 따른 피해는 결국 국민에 귀결된다”며 “안타깝고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 국회(정기회) 제13차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감액된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자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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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 특활비 전액 삭감으로 혈세 낭비를 막았다”며 “검찰의 사건 수사 예산은 사건 수가 줄어든 데 비례해서 제대로 삭감되지 못했다. 매우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예결위 문턱을 넘은 예산안을 다음달 2일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음 주 본회의에서는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 보고와 표결도 이뤄질 전망이어서 여야 대치는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당의 이날 예산안 강행 처리가 자신들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엄포성’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증액안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예산안으로 정부·여당을 압박한 뒤 차후 협상을 통해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2조원 증액 등을 얻어내려 한다는 것이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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