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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병역의무를 진다는 이유로 미성년 남성이 여성보다 손해배상금을 적게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2심 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해자가 사고로 잃은 장래 소득, 즉 '일실수입'을 계산할 때 군 복무 기간을 취업 가능 기간에서 제외하는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첫 하급심 판결이다.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가 판례가 변경되면 배상금 산정 시 군 미필 남성이 겪어왔던 불이익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지난 21일 피해자 A군의 부모가 사고 책임자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A군은 5살이던 2021년 9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다 배수구에 손이 끼이는 사고를 당해 숨졌다. A군의 부모는 수영장을 운영한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법원은 B씨의 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판단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손해배상금 산정 방식에서 1·2심 법원의 판단이 달랐다.
1심 재판부는 A군의 일실수입을 계산하며 성인이 된 시점에서 18개월을 빼고 그다음 날부터 65세까지를 일할 수 있는 기간으로 설정했다. 병역의무 기간에는 소득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군 복무 예정 기간을 가동 기간에서 제외한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다. 이 판례가 2000년 4월 선고된 후 24년간 바뀌지 않으면서 미성년 남성 등 군 미필자는 여자와 군 면제자에 비해 더 적은 배상금을 받는 상황이 지속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A군의 군 복무 예정 기간인 2035년 6월 8일부터 2037년 12월 7일까지 18개월을 일실수입 산정에 포함했다. "병역 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손해액을 산정하는 방식은 병역의무가 없는 사람과 비교해 불합리한 차별을 초래한다"며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현재 판례가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반할뿐더러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헌법 제39조 2항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한 예우의 필요성과 그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실질적으로 변화했다"며 바뀐 시대상을 언급했다.
국가배상법이 작년 10월 개정돼 군 복무 기간을 전부 포함하도록 바뀐 점도 주요하게 반영됐다. 앞서 개정된 국가배상법 취지상 똑같은 기준이 민법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다.
병사 봉급이 그동안 꾸준히 인상된 현실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이미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인상된 봉급을 수령한 반면, 사고로 군 복무를 하지 못하게 된 사람은 일실수입을 아예 받지 못하게 된다"며 "병역의무를 지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연한 사정에 따라 실제 수입과 기대 수입이 달라지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현역 병사의 계급별 복무 기간을 바탕으로 일실수입을 계산하며 구체적인 산입 방식을 제시했다. 올해 기준 최소 복무 기간이 2개월인 이등병의 월급은 64만원이다. 6개월인 일병과 상병은 각각 80만원과 100만원이고 4개월인 병장은 125만원을 받는다. 이 금액을 모두 합한 18개월간의 보수 1708만원에 생계비 3분의 1을 공제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미성년자는 도시일용노임을 토대로 일률적으로 배상금을 산정하지만, 군 복무 기간에 한해서는 병사 월급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소송대리인 박현광 법무법인 이신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국가배상법이 아닌 민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최초 사례"라며 "군 복무 기간의 일실수입을 인정하고 그 금액을 현역 군인의 월급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실수입
피해자가 해당 사고가 없었더라면 장래에 얻을 수 있었던 소득을 뜻한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는 미성년자 남성 피해자의 경우 군 복무 기간 소득이 전혀 없다고 계산해 남성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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