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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MT시평]PBR과 상속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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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수현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최근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0.9 이하로 내려갔다. 또 다른 대표기업인 현대자동차의 PBR은 지속적으로 0.5 주변을 맴돌고 있다.

PBR은 해당 기업의 시가총액과 순자산가치의 비율이다. 이것이 1 이하라는 것은 시가총액이 순자산가치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순자산가치는 달리 말하면 청산가치이며, 이는 해당 기업의 자산을 모두 해체해서 중고시장에 팔았을 경우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PBR이 1 이하이면, 자본시장에서 평가하는 그 회사의 가치, 즉 자산들의 유기적 일체으로서의 기업의 가치가 해체된 자산의 가치보다 낮다는 것이다. 시장자본주의에서 이러한 회사의 궁극적 운명은 당연히 해체이다. 만약 이런 기업들의 지분을 100% 인수하는 주체가 나타날 수 있고, 실제로 그 자산이 모두 중고시장에서 매각 가능한 것이라면, 그 주체는 자신의 자금으로 회사의 지분 100%를 인수한 후 주총을 열어 회사의 청산을 결의할 것이다. 청산의 결과로 인수 주체는 순자산가치와 시가총액의 차액을 자신의 이득으로 취할 것이다. PBR이 1 이하라는 것은 그 정도로 비현실적이고 치욕적이다. 위 두 대표기업의 분기 영업이익이 수 조 원인 것을 고려하면, 이 비현실성은 더욱 심화된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한국기업들의 성과가 자본시장에서의 평가와 완전히 절연되어 있는 것이다. 생산물시장의 성과가 자본시장에서의 평가로 이어지고, 자본시장에서 조달된 자금이 생산물시장에 투입되어 생산성이 올라가는 선순환의 구조가 파괴되어 있는 것이다. 이 파괴의 상당 부분은 상속세에 기인한 것이다. 지금 한국의 주요 대기업은 창업 2세대에서 3세대로 경영권이 이전되고 있다. 경영권의 이전은 선대 회장의 사망이 원인이고, 이는 상속세 부담으로 이어진다.

금융자본주의의 성장은 상속재산의 대부분이 주식이 되게 했고, 주식에 대한 상속세의 과세표준은 시가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할 경우 60%에 달하는 상속세율은 상속세 납부를 위한 무리한 현금화로 인한 횡령, 배임의 위험 증가와 오너의 지분율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과세표준의 인하이고, 이는 달리 말하면 주가의 억제 또는 하락이다.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주가의 하락에 인센티브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최고경영자는 생산물 시장에서의 격화된 세계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동시에, 자본시장에서 주가를 억제해야 하는 모순적인 임무를 짊어지고 있다. 이들이 주가 억제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대주주의 기업에 대한 장악력 유지는 자신들의 이익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지분의 과도한 분산 또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비자발적인 지분의 매각은 기업 자체의 경쟁력을 치명적으로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주주가 주가를 억누르는데, 소액주주가 주가 상승을 누릴 가능성은 없다. 코스피의 일일 거래대금을 가상자산시장의 일일 거래대금이 초과한 지 꽤 되었다. 주식시장에 실망한 투자자들은 이미 가상자산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근원적인 역인센티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벌이는 밸류업 캠페인이나 금투세 유예조치 등으로는 이들을 다시 주식시장으로 끌어올 수 없을 것이다.

이수현 이수현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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