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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경제포커스] 실종 신고! 尹정부 ‘실용주의 3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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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데이터 기초해 정책 결정

②더 나은 대안 있으면 수정

③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 수렴

약속해 놓고 하나도 안 지켜

조선일보

윤석열 정부는 2022년 5월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하고, 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있다면 수정, 보완하며, 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실용주의 3원칙'을 약속하고는 하나도 지키지 않고 있다.사진은 지난 8월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장면./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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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까맣게 잊었겠지만,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 과제’라는 게 있다. 최고 정책 전문가 200여 명이 두 달여 작업 끝에 2022년 5월 내놓은 윤 정부의 국정 운영 청사진이다. 그 보고서에서 “윤 정부는 국익, 실용, 공정, 상식을 국정 운영 원칙으로 삼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실용’에 대해 “①객관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기초해서 정책을 결정·집행하고, ②선택된 정책이라도 사후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나온다면 수정·보완하며, ③수많은 가능성에 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2년 반 동안 윤 정부는 이 원칙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의료 사태를 대입해 보자. 110대 국정 과제엔 일언반구도 없었던 ‘의대 정원 확대’는 윤 대통령이 ‘2000명 증원’을 덜컥 던지면서 시작됐다. 소송까지 제기돼 법원이 점검해 보니, 2000명을 뒷받침하는 ‘①객관적 데이터’, 그런 건 없었다. 전공의 집단 사퇴, 의대생 집단 휴학 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수많은 대안이 제시됐지만, 정부는 ‘②수정·보완’은 생각도 안 했고, ‘③열린 자세로 다른 의견 존중’도 없었다.

경제정책 운용에서도 ‘실용 3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윤 정부 전반기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의 제1요인이 ‘김 여사 문제’이지만, 4월 총선 이전만 해도 낮은 지지율의 1순위는 늘 ‘민생’이 차지했다. 윤 정부 핵심 정책인 감세가 효과를 못 내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 활성화, 소비 촉진 효과는 안 보이고, 막대한 세수 펑크만 두드러졌다.

미국 트럼프 1기 정부도 감세 정책을 썼지만,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다. 감세로 인한 세수 구멍을 관세 인상을 통해 메웠기 때문이다. 반면 윤 정부는 반도체 경기 침체로 삼성전자·하이닉스의 법인세 납부가 제로(0)가 되자, 아무런 대비책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 감세가 세수 펑크를 촉발하지 않으려면 지출 구조 조정이라도 해야 했는데 지출도 줄이지 않았다. 첫해 세수에 56조원이나 구멍이 났는데도, 해법을 찾기는커녕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같은 감세를 계속 밀어붙였다.

윤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문제가 생기면 수정·보완한다’는 ‘실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250만호 주택 공급’ 정책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와 건축비 상승, 전세 사기 사태 등으로 전혀 작동되지 않는데도, 주택 공급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변해 왔다. 부실 PF 정리를 계속 미룬 여파로 새 아파트 부지 공급이 중단되고, 공급 불안 심리에 금리 인하까지 겹쳐 ‘똘똘한 한 채’ 투자 광풍이 일었다. 하향 안정세를 보이던 집값이 폭등세로 돌아섰는데도 국토부 장관은 “일시적, 지엽적 잔반등”이라고 우겼다. 결국 그린벨트 해제까지 포함된 추가 공급 대책을 내놓고야 겨우 불길을 잡았다.

정부가 주택 대출 중단이란 극약 처방까지 동원해 집값 상승세를 누르고 있지만, 집값 불안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를 제약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실책이 취약 계층의 고금리 부담을 덜어줄 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윤 정부의 실책을 들여다보면 일찌감치 방향을 수정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문제의 존재 자체’를 외면한 채 미루고 버티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왜 이럴까. 대통령의 고집, 불통, 잦은 격노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대통령의 격노를 겁낸 관료들이 몸을 사리고, 이것이 정책의 수정·보완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커보인다. 임기 후반기를 맞은 윤 정부가 정책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대통령부터 ‘실용주의 3원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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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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